88올림픽을 유치해 놓고 온 나라가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제행사인 만큼 긍지와 자부를 가지고 세계인에게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보여주자고 독려했으며 국민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여 년이 훌쩍 지나갔다. 먼저, 문화적인 차이로 우리 전통음식인 보신탕을 서구인들은 혐오식품이라고 했으므로 제1호 정화 대상이었다. 또한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우리 전래의 풍속, 축제와 문화제, 일테면 유등제·장승제 등도 기획하여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말고 대한민국을 각인시키자고 했다. 동물사랑이 우리와 다른 서구인들은 그 이전에도 한국인이 보신탕을 먹는다고 미개인 운운하고 있던 차에 올림픽을 유치해 놓고 보니 그것을 개선하지 않으면 대회 불참도 불사하겠다는 극단론자도 있었다. 당시 정부는 약간의 강압을 해서라도 올림픽 기간에는 업소 간판을 내리게 하겠다고 했다. 더러는 전업을 한 예도 있었고 하루아침에 생업을 포기할 수도 없어 궁여지책으로 영양탕, 사철탕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달기도 했다. 그런데 발상의 전환인지 기발한 아이디어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업소는 `보`자와 `탕`자 사이에 고무신 한 짝을 그려 넣은 간판이 걸렸다. 궁하면 통한다(窮則通)던가. 번뜩이는 재치(?)를 보인 업소도 있었다. 자구책 치고는 참으로 기막힌 재치였다. 당시의 그걸 본 나는 지금도 간간이 생각나 혼자 웃는다. 그 한참 후의 일이다. 어느날 부동산중개업소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창문에 매매 전세 월세 다음에 `월농넘`이라는 안내 문구가 걸려 있었다. 주택형태의 이름도 하도 많아 조금만 관심을 멀리한 사이에 또 새로운 주택이름이 생겨나는 즈음이라 저건 또 무슨 새로운 주거 공간인가 했다. 호기심이 생겨 다시 봤더니 `투룸`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제서야, 아하~ 원룸을 음역(音譯)한 것이라고 직감하였고, 두문법칙에 따라 `월`로 발음되는 `원룸`이 `월농넘`이 됐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 맘대로 내리곤 길에서 실없이 웃을 수도 없고 집에 와서 나 혼자 웃고 말았다. 조그만 업소 공간에 7, 80세나 됨직한 노년들이 화투짝에 몰입하고 있었으므로 옛날 복덕방을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중개 본업보다는 소일이 먼저인 듯이 보였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원룸 표기 하나 제대로 못하는가 싶기도 했지만 그 글씨체만으로도 옛날 한학을 한 분들이 쓰는 특유의 모필체였음이 틀림없었다. 오래 전에 이른바 `두문동` 사건의 전말을 보고자 규장각을 간 일이 있다. `두문동 실기`라는 1752년에 쓴 모필적을 찾았는데 두세 사람이 쓴 필적이었으며 그리 잘 써지지도 않았고 세련미도 없었지만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정성은 들여서 쓴, 고색이 창연(?)한 글씨체였다. 흔히 서체를 말할 때 잠두마제(蠶頭馬蹄·가회 획을 그을 때 왼쪽 끝은 말굽 같이 하고 오른 쪽 끝은 누에머리 같게 쓰는 필법)를 일컫는다. 그 글씨체가 바로 잠두마제는 아닐지언정 그 중개업소가 내 건 필체와 거의 흡사했던 것이다. 조선조 후기에 와서 이른바 근대화의 출발점이 되었던 갑오경장 이후 개화사상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홍영식, 어윤중 등으로 조직된 신사유람단은 일본을 시찰하게 되고, 유길준 등의 구미시찰단은 미국을 순회하고 돌아와서는 국한문 혼용체인 `서유견문록`을 저술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서구와 문물의 교류가 활발하게 되었으며 지명, 인명 등을 음역하여 표기했던 것은 다 아는 얘기다. 음역의 역사는 이태리인 마르코 폴로가 동방을 여행했던 13세기 말로 올라간다. 그는 중국에 17년 간이나 머물렀고 그 여행기를 `동방견문록`으로 펴냈으며 당시의 우리 국명 고려를 최초로 코리아로 썼던 것이다. 일본을 지팡구로 소개했던 것도 그때였다. 지금의 지구촌은 오지의 소수민족을 제외하고는 코리아를 모르는 세계인은 없다. 러시아는 지금도 꼬레라 하고 고려인을 까레스키야라 부른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15세기에 와서 이태리 항해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신대륙 발견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지금의 남북아메리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 후 그 `월농넘`을 다시 보려고 가 봤지만 그런 삽상(颯爽)하고 정감어린 말을 더는 볼 수가 없었다.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세계인이 말하는 가장 독창적인 훈민정음이 자랑스러운 오늘의 우리 `말과 글`이 되기까지는 `월동넘` 같은 음역도 한몫을 한 것은 아닌가 한다. 그 노년들은 또 어디 가서 애교(?)스런 그런 간판을 걸어 놓고 소일하고 있을까? 때로는 치기(稚氣)가 애교로 보일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범람하는 외래어 속에 그렇게라도 음역하여 표기하는 그 노년들이 어쩌면 자랑스럽기도 하다.(2010. 5)
최종편집:2025-07-08 오후 04:59:04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페이스북포스트인스타제보
PDF 지면보기
오늘 주간 월간
출향인소식
제호 : 성주신문주소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3길 15 사업자등록번호 : 510-81-11658 등록(발행)일자 : 2002년 1월 4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고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45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성고e-mail : sjnews1@naver.com
Tel : 054-933-5675 팩스 : 054-933-3161
Copyright 성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