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존재합니다
미루나무 잎새에
소녀의 머리카락에
어린양의 등성이에
나는 이름도 많습니다
마파람, 하늬바람, 높새바람…
산자락을 스치면 산바람이라 하고
강가에서 노닐면 강바람이라 합니다
지상에서 내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습니다
때로는 활화산 같은
내 안의 열정 어쩌지 못해
지상의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고
산더미 같은 파도를 몰고 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떠도는 까닭을 모릅니다
내 안에 잔재해 있는
그대 자취만은 지워지지 않아
잊으려, 잊어버리려
오늘도 나는 황량한
겨울벌판을 헤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