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 루돌프는 1960년 로마 올림픽 육상 100m 결승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갱신하고, 200m와 4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로마 올림픽 3관왕이 되었다. 혼자 힘으로 설 수도 없던 작은 흑인 아이가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자가 된 것이다.
미국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난 월마는 4살 때 폐렴과 성홍열이 겹쳐 왼쪽 다리가 마비되었다. 절망이 앞을 가로막았으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월마를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이웃 농장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8km나 떨어져 있는 병원에 월마를 업고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리하여 3년 만에 월마는 자기 힘으로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걸을 수는 없었다.
"엄마, 난 걸을 수 없어." "아니야, 다시 해봐. 넌 걸을 수 있어. 월마야, 걸을 수 있다는 마음만 가지면 된단다. 지금 포기하면 영원히 걷지 못한다. 다시 해보자. 넌 할 수 있어."
월마는 어머니의 말을 굳게 믿고 희망을 가지고 걷는 연습을 열심히 했다. 보조대를 차야만 보행이 가능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끈질긴 노력으로 9살 되는 해에 다리를 감싼 보조대를 벗어 던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1살 때부터 농구를 하기 시작했다. 2년 후에는 육상을 시작했다. 결과는 언제나 꼴찌였다. 뒤뚱거리며 뛰는 월마가 온전한 두 다리로 뛰는 상대편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월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꾸준한 훈련으로 스피드
가 점점 향상되었다. 육상 코치 템플이 희생과 정성으로 월마를 도왔다.
드디어 월마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 4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의 나이 16살이었다. 그리고 4년 후 로마 올림픽에서 3관왕이라는 전무한 업적을 세웠던 것이다.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의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박사가 2006년 9월에 80세의 고령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많은 유용한 말을 해주었다. 그는 우주에서 날아온 중성미자(뉴트리노)를 처음 관측해 `우주로 향하는 새 창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 중성미자 천문학을 창시해 학위를 받고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소아마비에 걸려 몸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었다. 가을부터 연말까지 입원치료를 해야 했다. 그래서 1년을 유급하게 되고 친구들보다 한 해 늦게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말했다.
"제가 살아온 동력은 `이까짓 것`하는 반골정신인 것 같습니다. 남들이 우습게 보는 것 같으
면, 어디선가 `난 할 수 있다`고 하는 `오기`가 끓어올랐습니다. 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릴 때부터 안심하고 의지할 사람은 없다고, 모든 것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죠. 도쿄대 물리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도 이 오기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대학입학고사 원
서제출을 앞두고 기숙사에서 우연히 듣게 된 말인데, 물리 선생님과 저의 친구가 이야기하면서 `도시바 군의 성적으로는 물리학과에 들어가지 못할 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3개월 동안 이를 악물고 물리 과목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도쿄대 물리학과에 진학한 것입니다."
그는 몸이 불편한 데다가 대학시절에는 가족의 생활비와 형제의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는 바람에 물리학과를 29명 중 꼴찌로 졸업했다. 2003년 3월 도쿄대 졸업식에 초대를 받아 축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자기의 학부시절의 졸업성적을 있는 그대로 공개했다.
"저는 이따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물리학과를 꼴찌로 나왔다는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제 졸업 당시의 성적표를 그대로 스크린에 비추기로 했던 것입니다. 16개 과목 중 `우`는 `물리학실험1`과 `물리학실험2` 2개뿐, 나머지는 `양`이 10개, `가`가 4개였습니다. 왜 이런 일을 했느냐 하면, 우선 성적이 좋지 않은 졸업생을 격려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성적이 좋은 졸업생에게도 너무 기분 좋아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하고 싶었습니다"라고 했다.
학교의 우등생이라고 해서 사회에서도 우등생이 된다는 법은 없다. 인간의 진가는 대학에서가 아니라 사회에 나왔을 때 더 잘 드러나는 것이다. 학교 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배운 것을 이해한다는 `수동적 인식`을 얼마나 잘 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 `능동적 인식`의 힘이다. 그것은 곧 플러스 사고인데, 고시바 마사토시 교수를 문리학 분야의 달인으로 만들어준 것은 `안 된다`는 생각보다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새로운 길을 도전하는 힘, 곧 지성을 다하는 그 플러스 사고였던 것이다.
희망과 절망의 차이는 무엇일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게 된다. 이 할 수 있다는 플러스 사고가 꼴찌를 승리자로 만드는 힘이요 비결이다. (20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