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철야근무 마친 월급날 아침
퇴근 무렵엔 아내와 두 딸아이를 불러
국물 맑은 곰탕을 먹는다
빈 그릇 하나 더 달라 해서
곰탕 하나로 반씩, 둘로 나누어 먹는 딸아이들
뜨겁니 어쩌니 수선을 피우고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국물보다는
월급명세서에 더 눈길을 주던 아내는
내 그릇에 다소곳이 국물을 덜어준다
무엇일까, 국물이 너무 맑아서일까
창밖의 푸른 하늘 자꾸 올려보게 하는
이 목찬 뜨거움은 무엇 때문이냐
곰탕은 국물 맛이다 나는
빨간 다대기를 한 수저 풀어
후루룩 후루룩 시원한 국물을 마신다
--------------------------------------------------------------------------
월급 받는 임금노동자들은 월급 받는 날을 기다리며 산다.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지갑이 텅 비어 가는 것으로 달력을 보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을 아는 사람들이다.
철도원인 시인이나 그의 아내도 기다리는 날이 이 날이다. 시인은 월급날은 가족들을 불러내어 '근사한' 곰탕 외식을 한다. 아내의 눈길은 월급명세서에 가 있다. 늘상 보는 명세서지만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네 가족이 곰탕 세 그릇을 시켜놓고 서로 서로 덜어주는 데서 우리는 따뜻하고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삶이기에 더욱 생생한 장면이다. 국물의 맑음은 그들의 따뜻함을 표상하는데, 시인의 목으로 넘어가면서 뜨겁게 치미는 눈물의 깨끗함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신선함은, 시인의 아내가 "고맙다","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를 잊지 않는 데 있다. 아내는 시인이 흘린 땀의 가치와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적은 월급이지만 고마워할 줄 알고 아끼고 쪼개서 생계를 꾸려 가는 아내들이 있어서 우리 가정과 사회는 기본적인 건강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자본이 부풀리는 '욕망 과잉'의 과소비사회에서 자신을 절제하면서 소중한 것을 지켜 가는 삶의 가치와, 행복의 실체는 실로 이런 감동적인 계기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좋은 시(詩)다.
(배창환·시인·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