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겨울의 인고를 감당했기에 그 진가가 드러난다. 기나긴 북풍한설의 겨울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산천은 더욱 생명력으로 넘쳐난다. 겨울의 숲은 적막강산 그 자체다. 우리 숲과 산림의 상징인 백두대간도 겨울은 예외 없이 고난의 시기다. 숲 속의 주인인 야생동물들은 겨울이 되면 동면을 하거나 부족한 먹이를 구하기 위해 처절한 생존의 고투를 전개한다. 식물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성장하고 움직이고 영양분을 섭취하지만 겨울이 되면 다음
해의 왕성한 활동을 위해 일체의 활동을 중지하고 기나긴 잠에 들어간다.
사람들은 겨울 하면 1월 중·하순을 떠올리지만 백두대간의 겨울은 아마도 2월 중·하순으로 기억된다. 지리산부터 휴전선 넘어 금강산까지 백두대간의 길고 긴 산줄기에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시기도 사실은 1월이 아니라 2월 중·하순이다. 우리가 보통 폭설로 강원도의 산간지방이 고립되거나 설악산이나 지리산에서 조난사고가 발생하는 것도 1월보다 2월이 많다. 이는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주기 싫다는 자연의 몸부림이 아닐까 싶다.
폭설이 내린 백두대간의 능선에는 1m는 보통이고 2m가 넘는 눈이 쌓여 있는 곳도 허다하다.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선 겨울산이 으뜸으로 대접받는다. 백두대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670km에 달하는 백두대간 종주의 긴 발걸음에도, 춥고 배고픈 겨울보다는 그래도 힘들지만 쉴 때는 이래저래 낭만이 존재하는 봄부터 가을을 택하는 이가 많다.
한반도의 척추라고 일컫는 백두대간은 우리 자연 생태계의 상징이자 구체적인 현장이다. 그래서 백두대간의 봄소식은 어쩌면 기나긴 겨울을 이해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사실 백두대간의 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어떤 명함도 못 내민다. 실제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4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봄의 소식은 어지러움을 넘어 환상의 화원의 세계로 빠져 들 정도이다. 눈속에서 피어나는 노란 복수초의 생명력과 얼레지를 비롯하여 10여종 이상 넘쳐나는 온갖 제비꽃의 망울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유혹 그 자체다. 여기에다 철쭉꽃을 비롯해 진달래, 생강나무, 형형색색의 빛깔로 산천을 물들이는 봄소식은 봄의 깊이를 더해갈수록 여름을 재촉하는 신록으로 변해간다. 백두대간의 녹색지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참나무과의 신갈나무를 비롯한 떡갈나무, 굴참나무 등이다. 특히 신갈나무는 백두대간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 나무로 활엽수 중에 으뜸인 나무이다. 실제로 녹색연합에서 2년 간에 걸친 백두대간의 산림생태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 것이 백두대간의 숲을 형성하는 나무 중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종이 신갈나무로 나타났다. 이는 신갈나무가 우리나라 전체 숲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라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백두대간이 우리나라의 산지를 대표하는 산줄기이자 산림생태계의 핵심권역이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지형으로 살펴보아도 면적이나 범위에서 백두대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백두대간을 밟아본 이라면 그 기나긴 산줄기가 녹색의 생명줄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해마다 봄은 오고 백두대간에도 봄은 온다. 안타까운 것은 백두대간의 봄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신록의 생명줄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사실이다. 영원히 우리 터전의 늘푸른 생명줄기로 백두대간이 이어져 가야 하는 바람은 올 봄에도 여전하다. 그래서 더욱 환상의 세계 백두대간의 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