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슬프다. 1928년 지사보통학교로 개교한 나의 모교 지사초등학교가 2012년 3월 1일, 84년 만에 교문을 닫고 말았다. 나고 자란 곳이 고향이라면 코흘리개 때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 배우며 몸과 마음이 자라난 학교도 고향이다. 영원한 고향이다. 그런데, 그런데 고향이 없어졌다. 꿈도 추억도 실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아! 몹시도 슬프고 허전하다. 개화의 요람으로 여명을 밝힌 지 한 세기. 소풍으로 학예회로, 운동회로 푸른 하늘을 향해 깔깔 재잘대던 천진한 새싹들이 그 얼마이며 대가천 자양 받고 남도 명산 가야산 정기 받아 향토와 나라를 빛낸 낙락장송, 동량지재는 또 얼마였던가. 폭압의 일제에도 우리말 우리혼을 지켜 내렸고 고난의 6.25에도 오롯이 지켜 내린 꿈과 희망과 추억으로 점철된 광장을 누가 거둬갔는가. 두 반세기의 역사를 누가 쉬 잊을 손가. 실향이어야 하는가. 망향이어야 하는가. 나는 1947년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들뜬 마음과 설렘으로 지사공립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철부지에서 어엿한 학생이 된 것이다. 60여 명의 두 학급이었다. 그때 벌써 지사의 분교로 출발한 명륜, 수륜, 백운이 독립학교로 돼있었고 인구 폭주의 1960년대엔 월남국교까지 생겼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세태의 변화요 시대상황이라지만 이렇게 허탈할 수가 있는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개교 당시의 행정명은 지사면이었고 면 중심지에 있는 지사교가 4개의 학교를 낳은 모태인데 오늘에 와서 모태가 사라졌으니 온 가슴이 이리도 황량할 수가 있는가. 이제 모교사랑 구심점은 어디에 두어야 하며 졸업생 4천여 의 가슴가슴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일생 중 가장 소중한 시기에 가졌던 추억을, 연면히 이어가며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할 모교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단절해야 하는 심회를 어디에나 비할까? 학예회 등 학교행사가 지금의 정서로는 생소한 화두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때는 그게 아니었다. 당시는 생활 그 자체가 오로지 엥겔계수 충족을 위한 것이었으니 학교행사가 하나의 문화적 향유가 되기에 충분했던 시절이었다. 특히 운동회 때는 그야말로 노소 없이 주민이 참여하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집마다 두세 명의 취학자녀가 있었으니 결코 어린이들만의 잔치일 수가 없었다. 거기다 소박한 인정의 소통과 만남의 장이었다. 교통통신이 오늘에 비하면 가히 불모일 때이고 정말 그리운 사람이 있어도 반보기로 만나던 시절이었으니 행사 그 자체가 바로 교통통신의 광장이었다. 당시만 해도 여자는 조신이 최고 덕목 중의 하나였지만 운동회 때는 예외였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로맨스도 피고지고 했던 당시였다. 어린이들의 재롱에 함성이 일고 어른들의 동화(同化)에 축제는 그렇게 절정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들 모두를 일러 `낭만의 계절`이라 이름 붙여보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과 비교하면 순도 100%의 낭만이었다. 비록 모든 것이 부족해도 마음만은 넉넉하고 또 순수했다. 원초적 순수 그 자체였다. 당시의 소득 60달러 시대와 오늘의 2만달러 시대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그땐 `가르치고 배우고`가 전부였다. 그만큼 단순했고 순수했었다. 단순과 순수는 동의어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순수했으니 아이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입에 올리기도 꺼려지는 `일진`은 커녕 따돌림도 없었던 시절. 그랬던 시절이 바로 성선설의 본령이 아닐까 감히 피력해 보는 것이다. 오늘의 다원화 된 사회에서 계층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인한 끝없는 분란을 보고 차라리 `배고픈 시절`이 좋았다는 역설을 펴는 사람도 있다. 이 역설을 원용하면 당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고구마 옥수수 삶아야 했던 운동회, 점심시간에 물만 마시다가 소풍 때에야 도시락 먹던 일, 입던 옷 그대로 입고 학예회 무대에 섰던 일 모두가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아니라 슬픈 추억으로 남아야 하다니 역사의 단절은 이리도 크던가! 그때 고학년 학예회에서의 대사 한 마디가 아직도 나의 뇌리에 남아 있다. 졸업하면 나라를 위해 무얼 할 것이냐고 물으니까 상대역은 "희망도 포부도 펼 겨를도 없이 개죽음 하라는 징용을 가야한다"며 울분을 토하던 그 명연기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가장 아팠던 민족 수난사의 한 단면을 보이고자 했던 학예회였던 것이다. 이제는, 이제는 지사학교가 물리적 영속성은 끝이 났어도 그 위대한 가르침은 영원하리라! 4천여 동문 모두는 영원한 `지사인(志士人)`의 긍지를 가져야 하리라!
최종편집:2025-05-22 오후 05: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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