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심적인 3대 요소를 말할 때 흔히 지(智)와 정(情)과 의(意)를 말한다. `지`는 이지(理智)를 말하고, `정`은 감정을 말하고, `의`는 의지(意志)를 말한다. 이 셋 중 한국인에게 특별한 것이 `정`이라는 것이다. 이 정은 예기(禮記)에 나오는 소위 칠정(七情) 즉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두려움(懼), 사랑(愛), 미움(惡), 욕(欲)의 일곱 가지 인간의 자연적 감정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우리 한국인에게 특별한 것이기에 영어로나 독일어나 프랑스어나 일어 등으로도 딱 맞게 번역할 말이 없는 것이다. 사전상으로 보면 영어로는 첫째 `affection`을 들고 둘째로 `love`를 들고 있는데, 다른 한 편 `사랑`이란 말을 보면 영어로는 첫째 `love`를 들고 둘째로는 `affection`을 들고 있어 `정`과 `사랑` 두 가지가 개념상으로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지만 두 말의 다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는 어렵다. `정`에 대한 사전상의 정의를 보면 일반적인 정의로는 "사랑이나 친근함을 느끼는 마음"이라 하고, 심리학적으로는 "마음을 이루는 두 가지 요소 중의 하나, 곧 이지적인 요소에 대하여 감동적인 요소를 일컫는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해석을 다 합쳐도 우리 한국 사람이 `정`이라는 말로 나타내고자 하는 경험적인 감상적 내용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을 더 깊이 알고자 하면 그것과 가장 유비가 되는 사랑과 비교하는 경험적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정은 사랑에 비하여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젊은 남녀 간에는 단 시일 내에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대하여, 부부간에는 결혼 후 얼마 동안의 사랑 뒤에 그 관계를 끈끈하게 오래 지속하게 하는 것은 깊은 정이다. 그것은 마치 고향을 떠나 객지에 사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잊어버리지 못 하는 것과 같다. 둘째, 사랑은 미움이 없는 한 마음으로의 감정이지만, 정에는 고운 정 외에 미운 정도 있는 것이 사랑과는 다른 이질적 현상이다. 그래서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도 결혼 후 아직도 깊은 정이 쌓이기 전에 사랑의 냉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고, 결혼 후 오랫동안에 고운 정과 더불어 미운 정까지 쌓인 때에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이러한 심리적인 현상은 우리나라 대중가요 가운데 잘 나타나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보면 남진이 부른 `미워도 다시 한번`이란 노래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는 것이다.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 순정을 다 바쳐서 믿고 또 믿었건만 말없이 가는 길에 미워도 다시 한 번 또 조용필이 부른 `미워 미워 미워`란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잊으라는 그 한 마디 남기고 가버린 사랑했던 그 사람 미워 미워 미워. 위의 노래에서 `미워`라는 말은 `사랑`의 반대어인 미움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속에 쌓여서 화석처럼 굳어서 떨칠 수 없는 `정감`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 사랑은 그 마음에 일어나는 대로 잘 표출되는 현상이지만, 정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오랫동안 쌓여 있는 것으로서 잘 표출되지 않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이 `사랑`이란 말을 남녀 간에 수 없이 말하지만, 한국인은 부부간에 `사랑한다`라는 말을 여간해서 잘 쓰지 않는다. 흔히 텔레비전에서 노부부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했느냐고 물어 볼 때 거의가 결혼 후 40년, 50년 같이 살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고백을 하는 경우가 보통이며, 방송 담당자가 그 고백을 해보라고 하면 마지못해서 수 십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해요"라고 하고는 쑥스러워하는 것을 본다. 그러한 부부들은 얄팍한 사랑보다도 마음 속 깊이 쌓아온 정이 있기에 달리 `사랑`이란 언어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국인 부부들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살면서도, 서양 사람들에게 그토록 흔한 사랑의 고백을 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는 말로 나타나지 않는 정으로 살아온 것이다. 넷째, 정과 사랑은 그것으로 동사를 만들 때 `정들다`는 자동사가 되지만, `사랑하다`는 타동사가 되는 것이 다르다. 정은 수동적으로 드는 것이고, 사랑은 능동적으로 하는 것인데 차이가 있다. 정은 수동적으로 들여지기 때문에 그것을 막을 수가 없고, 한번 들여진 정은 떨칠 수도 없지만, 사랑은 자의로 얼마든지 자신이 안 할 수도 있고, 또 거부할 수도 있는 점에서 다른 것이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젖는 것이 떨칠 수 없는 병과 같기에 향수(鄕愁)를 영어로 `homesickness`라고 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최종편집:2025-07-08 오후 04: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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