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초 나에게는 매우 귀한 손님인 일본인 내외의 방문을 받았다. 당초 그들은 한국의 시골풍경을 보고 싶다는 부탁을 해왔다. 그러면 어떤 곳을 보고 싶은지 알려달라고 했더니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시골로 안내를 해달라며, 당신이 잘 알고 있는 시골은 당신 고향이 아닌가라는 얘기였다. 출향한지도 오래라 망설이다가 내가 아끼는 종제가 고향사정을 잘 알고 있어 용기를 내었다. 그래서 나의 고향 성주를 가기로 하고 모처럼의 한국관광이라 1박만 더 하면 우리 고향이 크게 자랑거리로 하고 있는 세종대왕 자태실과 고장의 특산물인 참외를 맛보이고, 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찰로서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팔만대장경을 간직한, 법보 종찰 가야산 해인사 관광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먼저 손님 蔦谷榮一 (쓰다야 에이이찌) 씨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를 한다. 그는 식료(안전한 식품) 그리고 농업(지속가능한 유기농업)과 환경을 연관시켜 일본농업을 새롭게 그랜드 디자인을 해야 된다는 주창을 하는 분으로 관련 저서도 많아 일본 농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활약이 큰 인물이다. 특히 요즘은 일본 농업계를 흔들고 있는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가 일본농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강연, 토론회 등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낸다고 하면서 잠시 머리도 좀 식히고 친구와 만나 한국의 아름다운 시골을 구경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 역시 20여 년 전부터 그의 생각에 크게 공감하는 바가 있어 친밀하게 교우해 왔던 터라 매우 반갑게 맞았다. 그분의 부인 역시 동경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정년퇴임한 후 동경 근처 야마나시(山梨)에서 도시 청소년의 인성을 높이고 그들에게 농사 및 농촌생활을 체험시켜 주는 노다까(農土香)라는 숙(塾)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 숙에서는 삶의 참모습(근로와 자연의 고마움)을 깨우쳐주고자 힘을 쏟고 있다고 하니 내 고향에 한번 모셔도 좋겠다고 생각하여 동행을 하게 되었다. 함께 내 고향 성주에 들어서니 시야 가득 하얀 파도와 같은 비닐하우스가 멀리 가야산 웅자를 배경으로 이천변을 따라 비옥한 들판에 펼쳐져 있는 것이 장관이었다. 먼저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연세가 높으셔도 매우 건강하신 숙부님을 뵙고 인사를 올렸는데 마침 갓 수확한 예쁘게 소포장한 참외를 또 유서 깊은 선비고을 어르신답게 당신의 휘호 한 폭도 함께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내가 자란 고향집도 둘러보았다. 나에게 이집에서 자랐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마냥 놀라움을 표했다. 다음, 일정은 촉박했지만 종제의 수고로 세종대왕 자태실을 찾았다. 나의 종제는 한학에도 조예가 깊고 향토사 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어 태실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태실은 단순한 역사적 유물만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생명을 존엄시하는 생명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평소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고향의 몇 곳 명소를 뒤로하고 떠나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으나 해인사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회연서원을 찾아서 선비고장으로서의 자취를 되새길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특히 동행한 부인은 우리 조상들의 교육의 장이었던 서원을 둘러보는 감회가 매우 뜻깊었던 것 같았다. 마침 그 귀한 매화가 북풍한설을 견디고 만개하여 옛 서원의 운치를 더해 주었으며, 이렇게 해서 백운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새롭게 복원된 심원사도 둘렀다.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자리하고 있는 위치며, 느껴지는 분위기는 백운이 감돈다는 마을 이름 그대로 속세를 떠난 것 같았다. 특히 대웅전의 부처님, 좌우에 위치한 관음전과 문수전이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은 더욱 안정감을 주고 있어 신비스러움을 더해줬다. 여기서 잠시 참배를 하고 목적지 해인사를 향해 가는데 정성스럽게 참배를 마친 내외분은 한국사찰의 부처님이 이렇게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어 주리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고 인자하신 표정이나 풍만하신 모습에 압도되더라며 솔직한 감상을 토로했다. 해인사를 둘러 하루를 묵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해인사에서의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다시 못다한 고향 얘기로 돌아가자. 성주에 와서 참외를 맛본 그들은 옛날 시골서 자라던 때의 참외를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하면서(일본에는 메론은 있으나 참외가 없 어짐) 아삭아삭한 촉감과 적당한 단맛, 황금색의 노란참외는 여간 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숙부님께서 주신 참외 몇 개를 소중히 가지고 다니면서 즐기는 것을 보고 나도 매우 기뻤고, 조기수확 된 참외는 이곳 성주에서만 생산된다는 얘기와 함께 우리고향의 앞서가는 시설원예 기술에 대한 자랑을, 특히 일본 농업계에서 크게 활동하고 있는 쓰다야 선생에게 유감없이 할 수 있어서 매우 보람있었다고 생각했다. 세종대왕 자태실(서기1438년 조성)에서는 옛날 우리조상들이 얼마나 생명을 존엄하게 생각했고, 이렇게 숭고하게 받들어왔다는 생명존중철학을 설명하면서,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평화를 사랑하며, 염원하던 우리 민족의 참모습이라고 비약도 해봤다. 또 회연서원에 대해서는 한강 선생, 당시에 세자의 스승이셨던 거유가 낙향해서도 후학을 위해 초당을 만들어 마음을 바치셨다는 얘기와 그 높으신 뜻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제향을 올리는 자리라고 설명을 했더니 부인은 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가 이렇게 깊은 뿌리를 가졌었구나 라고 하면서 감동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또 이번 기회에 좋은 가르침을 받았으니 노다가(農土香)의 일에 더욱 정진해야겠다고도 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다만 몇 가지라도 자랑스러운 내 고향의 모습을 소개하게 된 것이 보람있었고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내가 사랑하는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고향과 우리의 선진농업기술을 소개하고 나아가서 한국문화와 역사에 담긴 숭고한 뜻은 물론, 우수한 우리 민족의 철학과 사상을 알려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최종편집:2025-05-22 오후 05:49:07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페이스북포스트인스타제보
PDF 지면보기
오늘 주간 월간
출향인소식
제호 : 성주신문주소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3길 15 사업자등록번호 : 510-81-11658 등록(발행)일자 : 2002년 1월 4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고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45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성고e-mail : sjnews1@naver.com
Tel : 054-933-5675 팩스 : 054-933-3161
Copyright 성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