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 노벨상 시상식은 오후 6시에 모든 시상행사를 마치고 스웨덴 왕이 퇴장함으로써 제1장의 막을 내렸다. 6시 30분에 버스 편으로 참가자 일동은 남자의 경우 연미복을 입은 채, 여자도 야회복을 입고 스웨덴 시청에 마련된 축하 만찬장으로 이동하였다.
이 만찬도 7시 정각에 스웨덴 왕이 입장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윽고 왕이 짧은 몇 마디의 건배사를 마치고 참석자 일동과 함께 축배를 들었다. 특기할 사항은 1,500명의 신사숙녀에게 네 가지 술과 여섯 종류의 음식물, 두 가지 후식을 서빙하기 위하여 전국 각 대학에서 선발된 200명의 남녀 학생들이 자원봉사 형태로 일하는 점이었다.
주최 측의 말에 따르면 너무 많은 대학생들이 지원하여 올해도 시험을 거쳐 엄선한 다음 일정한 훈련을 거쳐 오늘 이 행사에서 음식 나르는 봉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구 사람들은 저녁을 그렇게 오랫동안 먹는 것인지, 네 시간 가까이 식사하는 일이 진행되었다.
그동안 간간이 음악이 연주되고 다른 공연도 있었지만 특히 식사를 하는 도중에 스웨덴 모든 대학의 교기가 차례로 입장하여 행사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켰다. 옆 사람의 설명에 따르면 인구 850만 명의 스웨덴에는 종합대학교가 6개, 단과대학은 25개뿐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전문대학까지 무려 400개에 이르는 대학이 난립되어 있는데…
필자가 앉았던 테이블에는 전 노벨 물리학상 심사위원장이었던 T.Claeson 교수 내외, 스웨덴에서 50년 이상 살았다는 교민 한영우 박사 내외(내과의사)등이 자리를 같이 하여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들의 정담이 오가는 동안 이번에 노벨상을 탄 사람들이 한 사람씩 차례로 올라가서 짧은 수상소감을 밝히는 순서가 있었다. 식탁에서 오간 이야기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러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세계인구의 0.1%에 지나지 않지만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노벨상 수상률은 20%에 이르는 우수한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개인을 희생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지만, 한국을 포함하여 많은 나라 백성들은 자기를 위하여 국가와 민족을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방 후 대만과 중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간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훨씬 적은데도 불구하고 중국교포들은 이미 8명이나 노벨과학상을 탔다고 한다.
미국에는 생존하고 있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만도 130명에 이르고 이웃 일본도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14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축하 만찬은 밤 11시가 되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때부터 참석자는 금으로 벽을 장식 했다는 2층 무도장으로 옮겨 간다.
거기서 선남선녀가 춤을 즐기게 되었고 밤 12시경에 이날의 스웨덴 국가적 행사인 노벨상 시상식이 모두 끝난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 중 지난 110년 동안에 모두 32개국으로부터 총 545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했으니 부끄럽지 아니한가?
여기서 1901년부터 2010년까지 110년 동안의 역대 노벨과학상 수상자 통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분야별로 수상자 총수를 보면 물리 189명, 화학 160명, 생리의학 196명 등 총 545명에 이른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의 수상자가 221명으로써 전체의 41%를 차지하고, 영국 79명(15%), 독일 65명(12%), 프랑스 32명(6%)으로써 이 네 나라의 수상자 총수는 397명(73%)에 이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노벨과학상 10명 이상을 배출한 총 12개국 즉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스웨덴, 네덜란드, 일본,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이 노벨과학상 수상자 500명을 배출함으로써 전체 수상자 총수의 92%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노벨상 수상자 10명 미만을 배출한 나라를 소개하면 호주, 덴마크(각 8명), 벨기에(4명), 이스라엘, 아르헨티나(각 3명), 핀란드, 중국, 헝가리, 스페인(각 2명), 체코슬로바키아, 인도, 이집트, 포르투칼, 폴란드, 루마니아, 파키스탄, 노르웨이, 베네수엘라, 우크라이나, 남아공 등 11개국(각 1명)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여러 나라들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은 그 민족의 우수성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경우에는 창의력 부족 때문일까? 한국 과학자들이 모방 연구는 잘 하는데 비하여 창의적 연구결과를 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 이라고 할 것이다.
노벨과학상 수상후보자로 선정되려면 먼저 분야별 수상후보자 추천위원으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된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나라에는 이 후보자 추천위원도 몇 사람 안 되지만(총 2,000여명) 그분들도 대개의 경우 외국 저명학자를 수상후보자로 추천하고 한국 과학자는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정녕 못 참기 때문일까? 노벨과학상을 타려면 먼저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독창적인 연구업적의 수립도 있어야 하지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심성의 개조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R&D 투자 면에서 세계랭킹 8위인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은 자성하여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도 노벨상 수상분위기를 가꾸기 위하여 하루 속히 스웨덴 한국대사관에 과학관의 파견을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별도로 우리 한림원이나 한국연구재단 같은 기관에서 과학자를 현지에 파견하는 일도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현지사정을 정확히 파악함은 물론 분야별 심사위원의 초청, 우리 선도과학자들의 세일즈를 위한 공동 학술행사 개최, 공동연구 프로그램 개발 등을 보다 활발하게 실시하는 일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것으로 노벨 과학상 수상시기를 5~10년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박한 희망사항이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되면 그만큼 우리나라의 국가적 품격이 높아지고 그런 나라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의 품격 또한 크게 향상될 것이 아닌가? 올림픽게임에서 금메달을 하나 따도 국민의 사기가 크게 높아지거든 하물며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한사람이라도 나오면 우리 국민들의 성취감과 자긍심이 얼마나 높아질 것인가?
그때 우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내외가 이 행사에 초청을 받은 것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앞으로는 더 자주, 더 많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이 초청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세계 32개국에서 600여 명의 과학자들이 수상한 바 있는 노벨과학상을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은 아직까지 단 한 사람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모든 과학자들과 과학기술행정 당국에서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많이 따기 위하여 4년 동안 태릉선수촌에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비지땀을 흘리지 않는가?
우리 과학자들도 크게 분발해야 한다. 창의적인 연구 성과를 올리는 일에 집중하여야 할 것으로 믿는다. 과학 기술 지도자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도 과학자의 세일지는 물론 스웨덴을 중심으로 과학외교를 강력히 펼쳐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사랑하는 후배 재학생 여러분! "나 같은 사람이 무얼!"하지 말고 "나도 하면 된다!"라는 강한 신념으로 물리, 화학 및 의학 생리학 공부와 연구를 열심히 하여 이 두메산골 성주에서도 머지 않은 장래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훌륭한 과학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은 나라는 국가의 장래를 과학기술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끝으로 모교를 도내 최우수 중학교로 발전시켜주신 전성수 교장선생님에게 경의를 표하며 아울러 부족한 저에게 이런 좋은 특강 기회를 마련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모교의 무궁한 발전과 재학생 후배 여러분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이 강의를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