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을 정립해 유명해진 찰스 로버트 다윈은 1809년 영국 슈르스베리에서 태어났다. 다윈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는 아니었으며 같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바로 아래 여동생보다 성적이 나빴다.
그러나 식물, 광물, 우표, 조개껍질 등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수집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다윈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다윈을 법률가 또는 의사 또는 목사로 만들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지만 그는 엉뚱하게도 박물학을 접했고, 박물학자로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헨슬로 교수의 식물학 강의에 감동을 받았고, 그 이후부터 헨슬로로부터 과학에 대한 재능은 인정받게 된다. 헨슬로 교수는 남미와 서인도 제도를 탐사하는 해군 측량선인 비글호에 탈 것을 제안했고, 이때 다윈은 약 3억년 전의 동물 화석과 말 화석을 발견했는데 말 화석에서 지금의 말과는 다른 여러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옛날의 동물들의 형태가 조금씩 변해서 지금의 것과 같은 것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자연 선택설의 기초가 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10여개의 화산으로 이루어진 갈라파고스의 화산섬에서 한달 이상을 머물면서 그곳의 동물과 식물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항해 일지에 상세하게 기록했다.
비글호의 탐사를 마치고 18권의 노트를 바탕으로 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생물, 화석, 지질,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생활 등 방대한 분야의 이야기가 세심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에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영국 왕립협회 정식 회원으로 추천되었고 하지만 다윈은 자신의 진화론이 그리스기독교 문화와 충돌할 것이 두려워 감히 발표하지 못하고 자료 정리와 집필에만 몰두 하고 있었는데 이때 젊은 학자 윌리스가 보낸 논문을 읽고 자신의 연구한 결과와 비슷해서 자신의 연구 업적이 발표도 하지 못한 채 윌리스의 업적에 묻힐 것을 두려워해서 윌리스와 공동논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다윈은 윌리스에게 경쟁심을 느낀 나머지 1859년 진화론의 요점을 정리한 을 부랴부랴 출판했다.
종의 기원은 대단한 반응 얻었는데 초판은 발행 당일 매진되었고 재판도 수천권이 팔렸다. 하지만 진화론을 믿지 않는 대부분의 학자들(종교계)에게 사람과 원숭이를 친척으로 생각한 다윈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렇게 되어 종교계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1892년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서’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획기적인 과학적 업적을 남긴 다윈은 어렸을 때는 재능이 별로 돋보이지 않은 소심한 아이였다.
그러나 다윈은 진화론을 확립했고, 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으며 새로운 자연 과학사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