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캔버스에 유채로, 크기는 208x264.5cm이며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에 있다.
당대 관람자들에게 는 주제뿐만 아니라 작품의 형식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것이었다. 마네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묘사하면서, 그 공간 속 여러 요소들의 크기나 위치를 원근법에 따라 조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단일 시점의 원근법에 따라서 풍경을 묘사하는 데에 익숙했던 당시 관람자들은 에 묘사된 배경에서 공간적 깊이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화면 중앙의 목욕하는 여인은 그 오른편에 그려진 배에 비해 너무 크게 그려졌기 때문에 관람자들은 원근감에 혼란을 겪었다.
마네는 화면 속 대상들의 색채를 묘사하면서도 색조의 조정에 의해 명암을 표현하는 방법인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거부했다. 그는 대상을 묘사하면서 중간 색조를 과감히 생략했고, 전체적으로 녹색과 갈색을 위주로 채색했다. 그 결과, 화면 속 대상들의 세부 묘사는 단순화되고, 대상의 실루엣(silhouette; 윤곽선)이 강조된 반면에, 명암의 표현이 최소화되면서 대상들은 입체적이라기보다는 평면적으로 보이게 되었다. 이처럼 공간적 깊이감을 느낄 수 없도록 그려진 배경과 평면적인 색채로 묘사된 대상들은 화면의 평면성(flatness)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당대 관람자들과 비평가들을 분노하게 했던 의 이러한 주제와 기법 때문에 이 작품은 오늘날, 모더니즘의 출발을 알린 혁신적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마네가 등장하기 이전, 회화의 목적은 감정이나 교훈과 같은 주제를 전달하는 것이며, 어떠한 주제를 전달하느냐에 따라 그 우열이 가려진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마네는 관람자로 하여금 주제나 내용보다는 회화 자체의 형식적 특성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이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이라는 모더니즘의 특징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또한 조형적으로도 입체감이나 원근감을 구현하기보다는 화면을 평면적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3차원적 실재를 2차원적인 캔버스 표면에 충실하게 재현해낸 작품을 좋은 작품으로 보는, 르네상스 이후의 환영주의(illusionism)적 회화 전통과도 결별을 고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마네는 현대 회화의 선구자이며, 이 작품 는 현대 회화의 문을 연 작품이라 평가되는 것이다.
감수 유정아/서울대학교 강사 출처: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