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1월 28일 대구 삼덕국민학교에 자리잡은 신병교육대에 입대했다. 이틀 후에 0156044 군번을 받았다. 015는 공통번호이고 나머지 네 개의 숫자를 가지고 각자 점을 쳤다. 6044(육영사사:肉靈死死), `육신도 죽고 영혼도 죽는다`? `4`자가 하나만 들어도 기분이 나빠하는데 두 개나 겹쳤으니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이듯이, 죽음이 죽었으니 사는 것이다.
12월 3일. 오늘은 일요일, 면회일이다. 아침 일찍부터 면회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나에게는 면회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원우라는 사람은 서문시장에서 장사를 하다가 붙들려 왔다고 하는데, 면회일이 아닌 때도 곧잘 가족 면회를 한다. 그때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 나하고 나누어 먹었다. 허우대도 좋고 수단도 좋은 사람이 어쩌다 한글도 모르는 까막눈이 되었는지, 무엇인가 적어 내야 할 일이 있으면 나한테 좀 써 달라고 한다.
12월 18일. 춘천역에서 하차했다. 시내는 깊은 눈으로 덮여있고 짙은 안개가 자욱이 끼어있었다. 저 멀리 북쪽으로부터 포성이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어떤 학교 운동장에서 인원 점검이 행해졌다. 일등상사 하사관이 단 위에 올라가더니 이 부대는 `보병 제8사단 21연대`라고 하며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는 일어서라고 했다. 수색대로 뽑기 위해서라며 일어서지 말라고 웅성거렸다. 그러나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일어섰다. 이원우가 나보고 수색대는 위험하니 앉으라고 소리쳤다. 20여 명이 연대 본부로 인솔되어 각자 이력서를 썼다. 나는 인사과에 배속되어 문서 작성과 등사하는 일을 맡았다.
1951년 2월 18일. 우리 연대본부는 제천까지 후퇴해서 넓은 들판에 진을 쳤다. 8사단은 중공군에게 포위를 당해서 많은 병력을 잃고 5사단과 교대하기로 되었는데 5사단이 도착할 때까지 제천 전선을 결사 방어하라는 작전지시가 내렸다. 그래서 연대본부에서 근무하는 모든 신병들이 차출되어 전선에 투입되었다.
2월 20일. 드디어 적이 마주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적군은 눈에 덮인 산봉우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병력이 많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아군 측에서는 계속해서 사정거리 훨씬 밖에 있는 적진을 향해서 총을 쏘아댔다. 소대장은 M1소총 탄환을 몇 줄이나 주면서 연속적으로 총을 쏘라고 했다. 적군은 수를 과시하려 하고 아군은 화력으로 제압하겠다는 신경전이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
날이 저물어지자 전진 명령이 내렸다. 산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후미에는 헌병들이 깔려 뒤따랐다. `딱콩!` 적진에서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그 총성을 신호로 천둥 같은 일제사격이 퍼부어졌다. 격렬한 총탄의 빗발 속에 야광탄의 불빛이 위협적으로 번득였다. 낮에 산봉우리에서 돌고 있던 적군이 어느새 내려왔는지 아군을 향해 바싹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위치는 아주 불리한 상태에 있었다. 우리는 눈 위에 훤히 노출된 상태에서 내려다 보고 쏴야 하는데 반해 적은 산 아래 쪽에서 납작 엎드려 우리를 똑바로 보고 쏘아댔다.
우리 쪽의 엄폐물이라고는 드문드문 있는 소나무뿐이었다.
적을 향해 마구잡이로 총을 쏘다가 한순간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손을 마구 휘저어 아무것이나 잡히는 대로 붙들어 겨우 멈추고 보니 내가 있었던 그 자리에 적의 야광탄이 비수같이 꽂히고 있었다.
섬뜩한 느낌이 차갑게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하나님!" 하는 생각밖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총알이 사람을 피해야 살지 사람이 총알을 피해서는 살 수 없는 현장이었다.
소대장이 앞에서 지휘하다가 서투른 소대원의 총알에 엉덩이를 맞고 뒤로 빠져 나갔다. 적군은 산 아래 쪽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냥 사격만 하더니 돌연 사격을 멈추었다, 순간의 정적이 지나고 나자 적이 후퇴하는 줄 알았던지 후방 지휘소에서 소리를 질렀다. "전진! 전진!"
적의 저항 없이 얼마간 조심스럽게 전진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 뒤에서 따발총·기관단총이 벼락 치듯이 일제히 불을 뿜어댔다. 적이 매복을 하고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습을 당한 아군은 혼비백산하여 후퇴명령도 없이 일제히 흩어져 후퇴하기 시작했다. 후방에 깔려 있던 헌병들이 먼저 달아난 데다 어두운 밤이고 보니 누가 지휘관인지 누가 졸병인지 분간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큰 소리 치는 자가 곧 지휘관 행세를 했다.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쪽으로 따라가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 좀 데려가 다오!" 이원우였다. 부상을 당해서 땅바닥을 기며 부르짖었다. "원우야,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면 된다." 이 말만을 남기고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잊을 수 없는 사지 전우, 이원우 이등병. 6·25를 맞을 때마다 그를 도와주지 못하고 나만 살겠다고 도망친 것을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럽고 죄스러울 뿐이다.
(`소경의 손을 붙잡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