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초에 개봉된 한국영화 `코리아`는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렸던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한반도가 분단된 후 처음으로 구성된 남북단일팀이 탁구 복식 경기에서 우승했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분단 40년 만에 단일팀으로 모이게 된 남북의 선수들은, 그동안 서로의 삶의 환경이 얼마나 달랐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같은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이념이 다르고 인생관·가치관이 다르다. 공통점이라고 하면 국가를 대표하는 탁구선수라는 점뿐이다.  경기를 앞두고 40여 일 동안 합숙훈련을 하면서 다른 사고방식과 서로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된다.  모두가 한국말을 하기에 서로의 말을 알아듣기는 하지만, 마음이 열리지를 않고 통하는 느낌도 없다. 갈등 속에 서로 다투기도 한다. 이해하고 싶어도 쉽게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은 서로를 가로막는 편견이 많고 삶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인간적으로 진솔한 모습을 서로에게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들 안의 스포츠 정신은 서로 다른 그들을 하나로 만들어간다. 결국 마지막에 마음과 힘을 합하여 세계 최강인 중국팀을 꺾고 우승한 남북의 선수들이 서로 껴안으며 감격해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경기를 모두 마친 선수들이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이별 앞에서 슬퍼한다. 특히 현정화와 이분희가 눈물을 흘리며 나누는 이야기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전화도 편지도 못하잖아...." 도대체 이런 이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주소 알려줘", "전화할게"라고 할 수 없는 이별.  2002년 12월 마지막 밤, 조일준 기자는 텅 빈 신문사 편집국에서 혼자 있었다. 숙직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경비실 수위가 "어떤 분이 찾아와 이상한 말을 하는데 기자님이 만나보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경기도 어디에서 왔다는 40대 남자는 대뜸 부족한 택시비부터 내달라고 했다. 술냄새가 섞인 하얀 입김이 찬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엉겁결에 2만 원을 주어 택시를 보냈다.  그런데 이 남자의 털어놓는 이야기가 기가 막혔다. 얼마 전 북한에 다녀왔는데 불안해서 잠이 안 온다, 자수를 하고 싶은데 경찰서 앞에서 몇 차례나 발을 돌렸다, `한겨레`에 말하려고 왔다.... 어이가 없고 난감했다.  남자는 아내와 이혼하고 딸마저 내준 뒤 중국집 주방 보조로 살고 있었다. "뉴스를 보니 북한 주민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최악의 기근과 자연재해로 수백만 명이 굶어죽고 있었다. 그 남자는 자기라도 동포를 먹여 살리고 싶었다. "짜장면 한 그릇이면 다른 먹을거린 없어도 되니까요"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 북중 접경지대인 단둥에서 강물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경비실 수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경찰에)전화할까요?" 기자는 마땅한 대답을 못 찾고 머뭇거렸다. 그 남자는 짧은 한숨 뒤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 달 가까이 북한 당국의 심문을 받았지만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었다. 결국 신분안전 보증서와 노잣돈을 받아들고 중국으로 추방되었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뿌리 깊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자수하여 광명 찾자"는 표어에 짓눌렸던 것이다.  갑자기 경찰차가 왔다. 뜻밖의 상황에 당혹감과 자괴감이 엄습했다. 기자는 경찰서 보안과까지 같이 가서 그 남자의 진술서 작성을 지켜봤다. 기자가 그 남자에게 해준 일이라곤, 짐짓 큰 소리로 형사소송절차와 피의자 권리에 대한 지식을 말해준 뒤 휴대전화 번호를 교환한 것이 전부였다.  굶주리는 동포에게 짜장면을 먹이고 싶었던 남자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의 잠입·탈출과 회합·통신이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감옥에 갔다.  이건 대체 희극인가, 비극인가? 자신도 밑바닥인 사내를 움직인 것은 무엇이었던가?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었을 게다.  유엔의 세계식량기구가 북한을 방문하여 찍은 어린이들 사진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열 살짜리 아이인데, 배고픔과 영양실조로 예닙곱 살도 안 되어 보이는 뼈만 앙상한 몸과 초점을 잃은 퀭한 눈동자... 영양실조에다 결핵·괴혈병 등의 질병으로 살아남는다 해도 몸과 마음이 정상적으로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이러한 상황을 그냥 둔 채, 이념을 이야기하고 정치를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1980년대 초 소련의 위성국 에티오피아에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 레이건 대통령은 적성국이지만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굶주린 어린이는 정치를 모른다"라고 했다.  지금 한반도 정책의 절대적 과제는 평화다. 무엇보다도 굶주리고 고통에 시달리는 북녘 어린이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인간의 도리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님, 남과 북이 화평하게 하소서. 통일은 좀 늦어도 좋으니, 서로의 소식만은 전할 수 있게 하소서. 굶주린 어린이에게 짜장면이라도 마음놓고 줄 수 있게 하소서. 잃어버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노래를 찾아 다시 부르게 하소서. (2012. 6. 25)
최종편집:2025-05-22 오후 05: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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