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
도종환 (시인)
들길 가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 만나거든
거기 그냥 두고 보다 오너라
숲 속 지나다 어여쁜 새 한 마리 만나거든
나뭇잎 사이에 그냥 두고 오너라
네가 다 책임지지 못할
그들의 아름다운 운명 있나니
네가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는
굽이굽이 그들의 세상 따로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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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너 나 할 것 없이 온통 진통의 격랑에 휩싸여 있어 들꽃 한 송이 새 한 마리 따뜻한 마음으로 돌볼 여유가 없으니 이 봄은 아무래도 봄이 아니다. 봄을 가져오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대자연의 순환이지만, 그걸 오감(五感)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행위에 대해 서로 따지고 '질타'하는 것은 크고 작은 생활 역사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어차피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는''그들의 세상'이 분명 따로 있음에도,'책임지지 못할' 꽃 한 송이 새 한 마리의 운명까지 간섭하는 것은 아무래도 오만이 아니겠는가. 이 오만을 벗어난 곳에 상생(相生)의 삶이 자리한다. 생명은 저 홀로 귀한 것이지 어떤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비교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깊이 눈을 감고 음미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시(詩)다.
(배창환·시인·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