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레온 플라이셔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8살에 피아니스트로 데뷔했다. 16살 때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미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하면서 피아니스트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런데 그가 37살 되던 1965년도에 돌연 희귀한 질병에 걸리게 되었다. 계속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다. 피아니스트에게 발병하는 일종의 직업병으로 처음에는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다가 점점 손 전체가 마비되는데 일단 그 상태로 악화되면 회복이 불가능한 병이었다. 의사들은 이 병에 걸리면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다고 했다. 그에게는 청천병력과 같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그는 앞으로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에 한동안 심한 우울증에 빠졌었다. 그러나 레옹은 끝내 자기에게 다가온 절망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섰다. "하나님, 지금은 피아노를 칠 수 없지만, 그동안 하나님께서 저에게 음악의 재능을 주셔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에 양손으로 피아노를 칠 수 없다고 하면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그는 모리스 조셉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왼손만을 사용하는 피아니스트로 다시 시작했다. 그리하여 왼손만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독특한 피아노 연주법을 고안해 냄으로써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피바디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계적인 유명한 피아니스트를 길러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그는 `음악 동력 발전소`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리하여 1994년 `올해의 악기 연주자` 상을 받았다.
한편 근육치료 전문가의 도움으로 10년이 넘게 눈물 나는 훈련을 한 결과 오른손으로 조금씩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어 마침내 1995년 카네기홀 콘서트에 출연하여 두 손으로 모차르트 곡을 훌륭하게 연주해서 청중들을 크게 감격시켰다.
2004년, 76세가 된 레옹 플라이셔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두 손 모두로 연주하는 음반을 내놓았다. `Two Hands`라는 제목처럼 음반 표지에다 피아노 건반 위에 놓은 그의 주름진 두 손을 찍은 사진을 실었다. 두 손을 쓰는 두 달 간의 긴 연주회를 앞두고, 76세의 노장 피아니스트는 근기와 노력으로 이룬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말했다.
"지난 40년 동안 브람스와 베토벤, 모차르트의 곡을 두 손으로 연습해 왔습니다. 수없이 운지법을 바꿔가며 그 곡을 완벽하게 연주할 때까지……."
만일 그가 40년의 세월 동안 오른손을 쓸 수 없는 것을 비관하며 좌절했더라면 40년 후에 주어질 그 놀라운 영예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곳에 기적이 일어난다.
앞에서 언급한 모리스 조셉 바벨은 근대 프랑스 음악을 얘기할 때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명료한 선율과 빈틈없는 구성으로 촘촘하고 꽉 짜인 음악을 구상했다. 스트라빈스키는 라벨 음악의 정밀함과 섬세함을 가리켜 `가장 완벽한 스위스의 시계제조업자`라는 표현을 했을 정도이다.
그의 곡 중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은 전쟁에서 오른팔을 잃은 오스트리아의 명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파울은 부호의 집안에 태어나 아버지가 열어준 살롱 음악회에서 세계적인 지성인들에게 자신의 소질을 선보이곤 했다. 그 모임에는 당대 최고의 명사들이 참석했는데 그 중에는 브람스와 말러, 그리고 브루노 발터 같은 이들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타고난 자질에다 좋은 환경 덕분에 오스트리아의 희망을 등에 짊어진 젊은 피아니스트로 성장해 나갔다.
그러나 전쟁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오른팔에 총상을 당했다. 여러 가지 노력을 동원해서 치료했지만 결국 오른팔을 절단하게 되었다.
그는 10여 년의 세월을 좌절 속에서 방황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현실 앞에 다가온 처지를 수용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겠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처한 현실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아는 작곡가들을 찾아 나섰다. 이유는 한쪽 팔을 위한 새로운 곡을 작곡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음악가들이 그의 요청에 난색을 표명했지만 애처로운 파울의 요청을 받아들인 음악인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자신은 신장·체중 미달로 참전하지 못했던 모리스 바벨이었다.
레온 플라이셔나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삶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곤경은 어떠한 것이라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은 역경 때문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난다. `팔다리 없는 희망의 전도사` 닉 부이치치는 말한다. "내 삶에 더 이상 한계는 없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넘어져도 좋다." "결코 포기하지 말라." 넘어진 횟수보다 한 번 더 일어서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