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주기적으로 엔진오일을 교환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최초로 승용차를 가지게 된 것은 1962년 초의 일이었다. 연구실 건물과 실험동물사육장이 약 3km나 떨어져 있는데 그 동물사육장 대사실험실에서 배출되는 각종 샘플을 실어 나르는 일에 그때 내가 가지고 있던 자전거로는 한마디로 역부족이었다. 길이 비나 눈으로 미끄러울 때, 자전거로 시료를 운반하는 일로 마음을 졸여야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중고차 매매시장에서 가서 1955년형 올스모빌을 한 대 샀었다. 난생처음 운전하는 차였지만 그 중고차는 승차감도 좋고 힘이 매우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끔 휘발유를 넣으려 주유소에 들리면 주유해주는 청년이 엔진오일을 체크하고 좀 부족하다 싶으면 기름을 보충해주곤 했었다. 그해 가을에는 Logan 시로부터 뉴욕주 Ithaca 시까지 나름대로 미주 대륙횡단을 하기도 했다. 떠나기 전에 자동차 타이어의 공기압을 점검하고 엔진오일을 보충하긴 하였으나 엔진오일을 교환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때 나는 엔진오일을 언제 어떻게 교환해주어야 되는지조차 몰랐다.
Itacha시에 온 지도 1년이 넘었을 때의 일이다. 그해 겨울 어느 아침에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이 차를 견인해서 서비스센터에 끌고 갔더니 미국인 기사가 "이렇게 오랫동안 엔진오일을 교환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 이 차의 엔진오일은 떡이 되었고 이 차는 더 이상 손을 볼 수가 없다"며 나를 힐난하였다. 그 쉽고도 단순한 일을 몰라 폐차할 수밖에 없었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왜 차를 파는 사람이나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어주는 사람이나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런 상식을 일러주지 않았을까? 자동차는커녕 자전거 한 대를 가져본 경험조차 없던 못사는 나라에서 유학을 온 사람이었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을까?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자동차 엔진오일의 교환은 교과서 식으로 매 5,000km마다 꼬박꼬박 교환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는 이와 유사한 경험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내 잇몸과 이빨 관리다. 우리가 어릴 때는 도대체 치약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저 소금을 손가락에 묻혀서 잇몸에 문지르는 것이 양치질의 전부였다. 그러니 이빨이나 잇몸의 관리가 제대로 되었겠는가? 내가 대학을 다니던 때에 처음으로 튜브에 든 치약을 보았다. 그것도 양키 물건을 파는 시장에 가야 살 수 있었으니까. 내가 이걸 사가지고 양치질을 할 때는 이미 어금니 쪽에 있는 여러 개의 이빨이 충치를 앓고 있었다. 드디어 내 나이 사십 대 중반에 이르러 나는 잇몸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야 했고 아래위 어금니는 몽땅 틀니를 하는 신세가 되고야 말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후에야 비로소 나는 식사를 하고 나면 반드시 양치질을 하고, 또 하루 한두 번은 리스테린이라는 소독약으로 구강 소독을 철저하게 하고 있다. 좀 일찍 이렇게 하였더라면 그 끔찍한 치과를 찾아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칠십여 년의 삶을 돌이켜보면 늘 중요한 일은 사소하고 쉽고도 단순하였다. 그러기에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던 것 같다. 여기에 어울릴지 모르나 "그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은 진리일 것이다. 모든 것은 미약하고 사소하며 단순한 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 삶은 `중요한 일은 단순하다`는 이 간단한 진리를 실천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6.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