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넷째 누나는 얼굴이 예쁘지만 몸이 약해서 우유빨대처럼 가느다란 몸통위에 얹혀있는 누나의 얼굴은 잡초 속에서 애처롭게 피어있는 씀바귀꽃을 연상하게 했다. 씀바귀꽃은 민들레 같기는 하나 민들레꽃은 백 원짜리 주화만큼 크고 꽃빛도 진한 노란색인 반면 씀바귀꽃은 십 원짜리 주화만큼 작고 꽃의 색깔도 연한 노란색이다. 민들레 잎은 기다란 타원형이고 톱날처럼 굴곡이 심하다. 그리고 씀바귀는 잎의 모양이 민들레처럼 기다란 타원형이기는 하나 톱날 같지 않고 밋밋하다. 민들레 잎이 진한 초록색인 반면 씀바귀는 하늘색이 가미된 연한 초록색이다. 다른 누나들은 자기들 별명에 불만이 없고 수긍을 했다. 그러나 넷째 누나는 자기의 별명이 너무나 나약하고 청초한 씀바귀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 누나는 보기에는 가냘프지만 강단이 있고 특히 달리기를 잘해서 초등학교 다닐 때 단거리 선수였으며 군내 초등학생 육상대회 때 100m달리기 시합에서는 언제나 우승을 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그 시절에 일본인 교장은 누나를 제로(0)형 전투기라 했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그 시절에 전투기 중에는 일본제 제로형 전투기가 세계에서 제일 좋고 빠르다고 했다. 그래서 넷째 누나를 그 교장은 제로형 전투기라고 했다. 그 당시는 여학생은 대부분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집에 있다가 열일곱 열여덟 살에 시집을 갔다. 넷째 누나도 열여덟 살에 혼인을 했다가 폐병에 걸린 것이 알려져서 시가에도 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치료다운 치료도 못 받고 꼬챙이처럼 말라서 스무 살이 되던 여름날 석양 무렵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오매(어머니의 사투리), 나 이제 간데이." 하더니 숨을 멈추는 게 아닌가. 죽은 딸을 안고 그야말로 구곡간장이 찢어지는 듯 슬프게 울던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지금도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일주일 전 내가 우리 집 화단의 잡초를 뽑는데 민들레꽃 옆에서 씀바귀꽃잎이 연란 노란색으로 피어서 미풍에도 한들한들 흔들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호미를 땅바닥에 팽개치고는 "넷째 누나야, 아니 제로형 전투기야! 나를 보려고 우리 집 화단에 피었구나."하고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씀바귀 꽃잎에 내 얼굴을 부비면서 흐느껴 울고 말았다. 나의 그리운 씀바귀 누나가 죽은 지도 60여 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 누나의 얼굴 모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잊은 적이 없다. 나는 그날 호미로 그 씀바귀와 그 옆에 있던 민들레를 흙과 같이 캐내어서 작은 화분에 옮겨 심고 나의 책상 위에 얹어 놓고 때때로 물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는 `씀바귀 누나야. 나도 언젠가 누나 곁으로 갈 거야` 하고는 또 눈물을 흘렸다. 씀바귀 꽃이슬에 떠오르는 눈동자`하던 수십 년 전 그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를 아내가 녹음한 것이 있는데 해마다 새 카세트에 그 노래를 녹음해 두기에 지금도 그 카세트를 틀어보면 이제 막 녹음한 노래처럼 산뜻하고 똑똑히 들리는 것이다. 그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나의 넷째 누나이기도 한 책상위의 씀바귀 꽃잎에 눈물이 어린 듯한 것은 내 눈에 눈물이 고인 탓일까? "씀바귀 꽃이슬에 떠오르는 눈동자"라고 옛날 그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를 불렀던 그 여자 가수도 나처럼 이제는 노인이 되었겠지! 살아나 있을는지! 그 드라마 주제곡의 일편단심 애청자인 늙은 아내가 이 수필을 쓰기가 끝날 무렵 또 그 카세트를 틀어준다.  세월은 가도 세월은 다시 오는데, 가버린 사람은 다시는 오지 않네  풀피리 소리에 들리는 그 목소리, 씀바귀 꽃이슬에 떠오르는 눈동자  아, 그 사람은 지금 그 사람은 지금, 오늘도 불러보는 그리운 그 이름.
최종편집:2025-05-23 오후 05: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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