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그룹 회장 윤석금, 1945년 충남 공주에서 농사꾼의 9남매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치약이라는 것으로 이를 닦아봤다. 부잣집 솥 안 밥알이 숭얼숭얼거리는 게 늘 부러웠던 어린 시절, 그의 꿈은 쌀밥을 실컷 먹는 것이었다. 은행원이 되어 돈을 많이 벌려고 강경상고에 입학했고, 이어 건국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학비와 생활비는 각종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음료 대리점을 시작했으나 자본 부족으로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때 우연히 세일즈맨 모집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이 브리태니커한국지사 부산지점이었다. 면담 날 사무실에서 영어도 잘하고 얼굴도 잘 생긴 청년을 보고 물어봤다. "이곳 직원 같은데 백과사전 몇 세트나 팔았습니까?" 대답은 "한 세트도 못 팔았습니다"였다. `저런 친구가 저 정도라니 나 같은 충청도 촌놈은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다음 날 다른 직원을 만났다. 그 직원은 지금까지 17세트를 팔았다고 했다.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도 않은 사람이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전을 팔았다. 세일즈맨은 쭈뼛쭈뼛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설명을 요령 있게 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 외웠다. 신뢰감 있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매일 거울 앞에서 30분씩 표정짓기 연습을 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얼굴에 밝은 인상이 생겨났고, 신기하게도 사전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브리태니커 세일즈에 뛰어든 첫해에 국내 1등을 넘어 세계 1등이 되어 멘튼상을 수상했다. 이 같은 발군의 실력으로 그는 초고속으로 승진하여 10여 년 만에 상무 명함까지 달았다. 이때 이화여대생이었던 부인 김향숙 여사를 백과사전을 팔기 위해 접근했다가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후 그는 브리태니커에서의 탄탄대로를 뒤로 하고 창업을 꿈꾸기 시작했다. 판매뿐 아니라 제작과 디자인 등 출판의 전 과정을 스스로 체험해보고 싶었다. 주변의 억센 만류를 뿌리치고 퇴직한 그는 1980년 도서출판 헤임인터내셔널을 출범시켰다. 첫 상품은 일본에서 수입한 영어회화 교재 `메슬`을 한국판 해설서를 덧붙여 냈다. 세련된 내용과 편집으로 불티나게 팔렸다. 그해 7월 퇴근 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과외금지령 소식을 듣고 해직당한 실력 있는 교사들을 모아 `헤임고교학습지 테이프`를 제작했는데, 이것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것으로 기반을 잡은 그는 평소의 꿈이었던 아동전집물 개발에 착수했다. 회사 이름을 `웅진`으로 바꿨다. 그의 고향인 공주의 옛 이름이기도 하고, 웅장하고 진취적이기를 바라서였다. 아동도서 사업은 또 한 번의 히트를 가져다주었다. 84년 제작비 8억 원이 투입돼 36권으로 완간된 `어린이 마을`은 출판사상 전무한 700여만 권, 450억 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이에 힘입어 웅진식품과 웅진코웨이(정수기·화장품)를 잇따라 설립하고, 사업을 확장해나가 2009년에는 14개 계열사, 매출 6조 원대, 자산 8조 원대, 재계서열 30위권 그룹으로 성장했다. 맨주먹으로 직원 7명의 소기업에서 시작해 30여 년 만에 대기업 반열에 올라서게 함으로써 중소기업 최고경영자에게는 우상과 같은 인물이 된 윤석금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여기까지. 웅진그룹은 지금 큰 위기에 빠져 있다. 지난 9월 26일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계열회사 극동건설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되었다. 직장인들의 꿈이자 롤모델이었던 그의 `샐러리맨의 신화`가 처참하게 무너졌다. 갱생조차 불투명한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법정관리 신청으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고 혹평까지 받고 있다. 그는 말했다. "기업확장에 욕심을 부려 건설과 태양광에 무리하게 투자하다 보니 기업회생절차까지 오게 되었다. 그동안 잘 해왔기 때문에 다른 업종으로 확장해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자만심 때문이었다." 역사가 토인비는 "역사적 실패의 절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개인도 기업도 자신의 성공 공식을 반복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실패의 덫이 된다는 것이다. 웅진의 성공 공식은 새로운 사업을 계속 개척하고, 다른 기업을 계속 인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14계열사를 만들었는데, 마지막 시도인 건설(극동건설)·금융(저축은행)·태양광(웅진에너지) 사업 진출에서 발목이 잡혔다. 웅진의 몰락은 다각화 전략, 그것도 무리한 욕심과 자만으로 본업과 관련이 적은 분야로까지 다각화하려다 실패한 것이다. 욕심 너무 부리지 말아라. "넉넉함을 알면 즐거우려니와 욕심이 많으면 곧 근심이 된다(知足可樂 務貪則憂:景行錄). "오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잠언 16:18). 긍정적인 마인드로 성공한 후에는 그것을 잊고 마음을 낮추어야 살아남는다. 전문 분야 아닌 것에 함부로 뛰어들지 말고 본업에 충실하라. 이것들이 윤석금 회장이 우리에게 준 생생한 교훈이다. (2012.10.30)
최종편집:2025-07-08 오후 04: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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