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동창회 소속 어느 위원회가 동창회 역사상 처음으로 모교나 동창회의 사무실이 아닌 인천지역에서 개최된 적이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때마침 서해안 명물인 꽃게가 한창이고 동창회를 위해 수고를 많이 하고 있는 위원들을 대접하고 위로해 드렸으면 하는 정윤환 상임부회장의 호의 어린 초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교의 학장을 비롯한 17명의 위원들이 모여서 준비한 안건을 신속하게 처리했고, 그 다음으로 즐거운 회식시간이 이어졌다. 모처럼의 기회였던 지라 몇 잔의 술이 오가는 사이에 좌석의 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했고, 웃음소리와 농담이 오가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누군가의 제의로 노래방으로 2차를 가게 되었다.  이때에 나는 두 사람의 동석 위원과 함께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내 신발인 듯한 구두를 찾아 신었는데 막상 2층 식당에서 계단을 내려올 때 발이 좀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즉각 구두가 바뀐 듯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동행한 어느 위원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신발이 바뀌지 않았나를 체크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가라사대 한참 앉아 있다가 신발을 신으면 발이 쪼이는 현상이 있는 법이라며 그냥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찝찝해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차 속에서 구두를 벗어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신고 간 외국산 명품구두가 아닌 국산 금강구두였던 것이다. 이미 고속도로에 들어선 다음이니 되돌아갈 수도 없고 해서 우리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사실을 이실직고했다. 왜냐하면 집에 가서 집사람에게 들어야 할 잔소리를 미리 막아보자는 심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우리 집사람은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그렇게 깐깐한 당신에게 우째 그런 일이 다 생겼노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그런 실수를 저지른 일이 없는데...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하면서 집사람은 더욱 고소해 하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구두를 바꿔 신고 오게 된 경위를 자세히 들은 집사람은 몇 차례나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 무안하다 싶기도 하다가도 속으로 아무리 이름 있는 구두지만 이미 몇 년이나 신은 헌신발인데 그걸 버리는 대신 우리 집사람을 이렇게 즐겁게 해 주었으니 그까짓 헌 구두가 아까울 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금강구두를 종이봉투에 담아 가지고 동창회 사무실에 갖다 맡겼다. 행여 임자가 나타나거든 그 구두를 돌려주라는 취지였지 추호도 내 구두를 다시 찾겠다는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 뜻밖에도 그날 오후 내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며칠 사이에 내 구두를 가져와서 바뀐 그 금강 구두를 찾아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해서 버려도 아깝지 않은 나의 헌 명품구두를 다시 찾았을 뿐만 아니라, 이틀 동안 우리 집사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준 것이 되었다. 크게 득 보는 장사를 한 셈이라고나 할까? 이 일 때문에 지난날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함께 근무하던, 그러나 이미 20여 년 전에 작고한 C교수 생각이 났다. 그 C교수가 예전에 주니어 교수 모임에서 좀 많이 마신 탓인지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택시를 타고 귀가를 한 적이 있었다. 눈이 쌓인 그 도로를 맨발로 걸어갔으니 그의 용맹성은 알아줘야 했다. 결국 그 구두는 이튿날 주인에게 돌려줄 때까지 내가 보관했는데, 구두를 찾으러 온 C교수가 그날 저녁에 집에서 자기 사모님에게 야단맞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잔소리를 많이 들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 후에 들은 얘기인데 옆에서 잘못 조언을 해 진짜 내 신발을 찾을 기회를 봉쇄했던 그 위원은 죄책감으로 나에게 명품구두를 변상하기 위해서 새 구두를 사고야 말았다. 덕분에 구두가 한 켤레 더 생겼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인 셈이다. 구두 한 벌의 돌고 돔이 이리도 재미있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2009. 5. 1)
최종편집:2025-07-08 오후 04: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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