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전 내 나이 스무 한 살 때였다. 논산 훈련소에서 전반기 기초 군사훈련을 끝내고 부산의 병기학교에서 기술교육을 받은 후 동두천 근처에 있는 병기 창고 중대에 배속되었다. 나는 교육을 받은 특기와 상관도 없는 관리과의 경리병이란 보직을 얻었는데 펜대와 주산알을 잡은 이를테면 육체가 조금 편한 사병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첫날부터 직속상관이던 곽 중위와 친숙해 졌다. ROTC 장교인 곽 중위는 성품이 호방하고 서글서글해서 누구에게라도 호감을 받을 수 있는 미혼 남자였다.  어느 토요일, 곽 중위는 나에게 외출증을 끊어주면서 갈만한 곳이 마땅찮거든 함께 동두천 근처에 있는 소요산에 가자고 했다. 소요산은 경기도의 금강산이라고 할 만큼 풍광이 수려해서 조선조 때의 김시습과 서화담이 즐겨 찾은 것 때문에 소요산(逍遙山)이라 부른다고 했다.  곽 중위가 말한 대로 소요산은 명산이었다. 수정 같은 맑은 물이 바위 계곡으로 노래하듯 흐르고 있어서 처음 그 곳을 갔던 나는 경탄을 연발했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자재암이란 암자 앞에 이르렀을 때 젊은 여자 하나가 피켓을 하나 들고 있는데 춘정(春情)이 약동하던 나로서는 소요산의 풍경보다도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것은 곽 중위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한 송이 산목단(山牧丹)같은 여인의 미모에 취해서 우리들은 넋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 여자가 들고 있는 피켓에는 "길소뜸을 아시나요"라는 반듯한 붓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 피켓의 글씨가 아니라도 나는 그 여자와 대화를 하고 싶었기에 그 글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길소뜸은 그녀의 고향인 황해도 어느 해변에 있는 마을 이름이며 피켓을 들고 서있는 까닭은 6.25전쟁 때 잃어버린 남편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전쟁 때문에 수많은 가족을 잃던 때여서 그 여인이 미인이 아니었다면 나와 곽 중위의 관심은 곧바로 소요산의 풍경으로 빠졌으리라. 길소뜸 출신의 그녀 남편을 찾기라도 한다면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하는 가를 물었더니 그녀는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의정부의 어느 초등학교로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곽 중위와 나는 묘한 라이벌 사이가 되었지만 나이가 어리고 졸병인 나로서는 애시당초 곽 중위와 적수가 되지 못해서 곽 중위의 연애 연락병`으로 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곽 중위는 필사적인 짝사랑 투쟁을 했으나 우리들의 분발은 도로(徒勞)가 되고 말았다.  어느 토요일 나는 마지막 일전이라는 곽 중위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 못하고 구혼 편지를 들고 의정부에 있는 그녀의 학교엘 갔다. 그날 그녀는 하얀 모조지에다 싸인 펜으로 옛 삼행시 한 편을 써 주면서 생긋 웃는 것이었다.  옥출곤강(玉出崑崗)이면 뫼마다 구슬 나고  금생려수(金生麗水)이면 물마다 금이 나며  여필종부(女必從夫)이면 임마다 따르리까  나는 그 여선생의 반듯한 얼굴만큼이나 단정한 그녀의 싸인 펜글씨에 애간장이 다 녹아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곽 중위보다 두 살 연상이고 나보다는 여섯 살이나 나이가 더 많은 유부녀인 길소뜸 여인의 고매한 지조에 깊은 경의를 표한 후 부대로 돌아와서는 곽 중위에게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싸인 펜으로 쓴 그 삼행시는 곽 중위에게 주지 않고 고이 접어서 내 속옷 깊이 보관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간직할 분홍색 매화의 향기이기에.  그 후 그 여교사가 어디로 전근 갔는지도 알지 못하고 곽 중위는 예편했고 나도 제대해서 귀향해버렸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영화진흥공사(지금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영화 원작을 공모한다는 광고를 본 나는 거액의 상금보다도 만에 하나 나의 작품이 영화화된다면 그 옛날 길소뜸 천사를 만날 지도 모른다는 요행 때문에 그녀가 겪은 간절한 사연들을 적어서 투고했었다. 위대한 신은 나의 기구를 저버리지는 않았던지 수 백편 공모작 중에서 최우수 작품으로 당선되어서 영화화 된 게 이른 바 `길소뜸`이였다. 임권택 감독, 신성일, 김지미 주연의 길소뜸은 대종상 그랑프리, 작품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그리고 베를린 국제영화제 본선 진출 등 그 당시 언론 매체에는 연일 길소뜸이 화제였다. 길소뜸 시대에는 세월의 여울 속으로 흘러가 버리고 구애의 심부름꾼이던 그때의 젊은 병사도 이제는 노인이 되었으니 흐르는 세월은 눈물겹도록 서글프기만 하다. 재색을 겸비한 길소뜸 천사는 지금 어느 하늘 아래 살아나 있을까.  나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10여 년 전 내가 신성일과 만났을 때 나는 신성일에게 약속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길소뜸의 남자 주인공 김동진(신성일 분)이 빈사상태에서 쓰러져 있다가 어느 농부에게 구원을 받았던 그 곳에 작은 비석이라도 세우겠다고 했더니 신성일은 뜻있는 일이라며 축하한다는 비문을 써 주면서 서명까지 해준 게 있는데 종형의 소유인 그 땅도 다른 사람에게 팔려서 내 땅으로 만들기 어려울 것 같고 신성일의 축하 메시지가 적힌 그 종이만 노랗게 변색이 되어 노인이 되어 버린 내 얼굴 같기에 눈물겹도록 쓸쓸할 뿐이다. 세월이여 인생이여!
최종편집:2025-07-08 오후 04: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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