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알프스 산기슭에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하여 격전을 버리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난 지 5개월 만에 독일군과 영국군이 70만 명의 전사자를 냈다. 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격렬한 전투가 계속될 때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영국군 진지에서 Merry Christmas!라고 하는 전광표지를 적진 앞에 게시했다. 이때 점점 포성이 줄더니 드디어 포성이 멈췄다. 독일군 측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독일인 프란츠 그뤼버가 작곡한 것이다. 독일군이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영국군 진지에 들려왔다. 영국군 측에서도 합창을 했다.
한참 동안 합창을 하고난 후에 영국군이 무장을 해제하고 손에 손에 초콜렛과 캔디와 담배를 들고 상대방 전선을 향해 걸어갔다. 독일군 측에서도 마찬가지로 손에 들었던 총을 내려놓고 그 손에 캔디와 초콜렛 등을 들고 영국군에게 다가갔다. 양군이 서로 만나 손에든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서로 손을 잡고 캐럴을 합창했다.
날이 새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에는 독일군과 영국군이 축구시합을 했다. 3:2로 시합이 끝나고 양군은 각각 자기 진지로 돌아갔다.
그러나 양진영 어느 쪽에서도 발포를 하지 않고 잠잠했다. 그들은 한 하나님, 한 주님을 섬기는 형제임을 새삼스럽게 확인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그들 마음을 사로잡아 그 어느 쪽에서도 발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휴전은 계속되었다. 사령관이 직접 나서서 발포 명령을 내렸으나 양쪽에서 누구도 발포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각각 그 부대를 후방으로 철수시키고 다른 부대로 대치했다.
지금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떤 분노가 있는가? 갈등이 있는가? 아직도 남과 해결하지 못한 찌꺼기가 남아 있는가? 이 모든 것 풀어놓고 화평의 씨를 심는 크리스마스가 되게 하자.
19세기 미국 교회의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데는 D.L. 무디 같은 위대한 부흥사의 역할도 컸지만, 무디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복음성가와 간증으로 크게 민중을 감동시킨 아이러 생키(Ira Sankey)의 영향력도 컸다.
어느 날 생키가 증기선을 타고 멜러웨어 강을 여행하고 있었다. 마침 12월 24일이었다.
사람들은 유명한 가수 생키가 그 배에 탄 것을 알고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목자의 노래(Shepherd Song)`라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다. 그러자 한 사나이가 앞으로 달려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당신은 전쟁 때 북군(Union Army)에 있었죠? 나는 당신을 기억합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하며 사나이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생키가 "내가 북군에 종군한 것은 사실이오, 그런데 어떻게 나를 아시오?"라고 반문하자 그는 기막힌 사연을 고백했다.
"1862년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나는 남군의 척후병으로 북군 진지에 접근했습니다. 한 북군 병사가 언덕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죠.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접근해서 총을 겨누었어요. 그런데 그 병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 부르신 `목자의 노래`였어요. 아니 당신이 틀림없습니다. 그리운 어머니와 동생들, 교회에서 친구들과 크리스마스를 지키던 추억들... 당신이 2절을 부를 때쯤에는 나는 당신을 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던 어머니가 `살아서 돌아오너라. 기도 하겠다`고 하셨는데, 북군 병사의 어머니도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기도를 아들을 위하여 할 것을 생각하니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습니다."
생키는 자신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보초를 섰던 일을 기억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얼싸안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