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노력하고 공을 세운 분들을 기리자는 뜻으로 현충일을 정하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자유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흘린 피와 목숨을 대가로 얻어진 것인 만큼 후손들이 이들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또 이들을 잘 섬기고 기리는 것이 장차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들로 하여금 애국정신을 발휘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미국은 국익을 위해 전장에 나서는 젊은이들에게 ‘국가가 당신과 당신가족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무한한 신뢰감을 줘 그들이 국가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기꺼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 미국이 6.25의 포성이 멎은 지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북한지역에 있는 미군 유해송환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과연 세계 최강의 선진국다운 모습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지금 이들을 제대로 섬기고, 기리고 있는가? 수많은 사자(死者)의 유해를 찾지 못해도 별반 관심이 없고, 전쟁포로가 고통에 신음하고 있어도 외면하고 있으며, 고령(高齡)에 부상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참전용사, 미망인, 유족들은 쥐꼬리만한 수당에 통한의 분루를 삼키고 있다.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서 구했다는 자긍심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빨리 죽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절망감에 절절이 젖어있는 것이다.
이래서야 장차 누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치겠는가. 한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전쟁이 나면 참전하겠느냐’는 물음에 그렇다는 대답이 중국, 일본 보다 훨씬 낮은 12%에 불과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
상대적으로 예우 받는 소위 민주투사들은 인간의 권리향상을 위해 싸웠지만 이들은 국가의 존망과 생사를 두고 처절하게 희생된 자들이다. 희생의 의미를 따지자면 차원이 다르다.
하긴 꼼수 부려 의무마저 저버린 위정자나 부유층 인사가 상당수이니 그들의 희생의 숭고함을 어찌 알겠으며, 그들에게 보훈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아마 하늘나라에서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보훈의 달을 맞아 한달 아니 현충일 하루만이라도 정성스럽게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되새기고 넋을 위로함이 어떠하겠는가. 자식 손을 꼭 잡고 참전용사들의 무용담을 듣거나 전적지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