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안전에 위협을 느낄 때 자기보호 본능이 발동하고 공격적 행동성향을 갖는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몰고 온 건강안전권의 위협에 항거한 촛불시위가 그 좋은 예이다. 촛불시위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참여했다. 심지어는 유모차를 앞세운 아줌마 부대도, 어린 학생들도 대거 가담했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으며, 그 이유는 하나같이 국민들의 ‘건강권’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안전을 지키겠다던 촛불 향연은 또 다른 형태의 안전에 대한 위협 즉,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이나 일본의 독도 영토권 주장 같은 분쟁에는 침묵하고 있다. 아니 보이지도 않고 움직임도 없다. 건강권은 안전의 위협이고 관광객 총격은, 주권침해는 우리의 안전에 대한 도전이 아닌가.
특히 북한에 대한 관광은 금강산, 개성을 비롯해 백두산까지 확대될 전망이며, 개성공단에도 1천500여명의 남한 근로자가 상주하고 있다. 엄격하게 출입통제구역을 설정하고 있는 북한의 실정을 감안하면 제2 제3의 총격사건이 없다고 보장할 수 있는가. 세상에 출입금지구역에 출입한 민간인, 그것도 관광객에게 조준사격을 가하다니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만약, 미군들의 출입통제구역에 침범했다가 총격을 받았다면 지금처럼 모른 체하고 침묵으로 일관했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쇠고기 파동 때 보여준 몇 수십 배 광란의 저항을 보였을 것이다.
사안에 따라서 행동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언가 의도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누군가 반미 성향의 조직화를 획책하는 무리들의 술수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평화적 축제분위기였던 촛불향연이 시간이 지날수록 반미, 반정부 투쟁으로 변질되며 폭력화한 것은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우리가 반미기치를 드높여야 할 정도로 미국은 밉고 나쁜 나라인가. 세계 정치·경제·외교·군사 등 거의 전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강대국이라서 상대적 피해의식에 의한 것은 아닌가. 그들은 우리에게 일부 자국의 이익을 강요한 적이 없지 않지만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기여한 바를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며, 미래 전략적 파트너의 대상에서 배제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우리를 지배하고 침탈하며 끊임없이 괴롭혀온 주변국을 더 경계하고 이들의 야욕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판에 일방적으로 반미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안전을 위협하는 사안에 항거하는 행위는 경중의 문제에 따라 하고 안 할 문제가 아니다. 안전보장이야말로 국가의 자존과 생존권을 가늠하는 최대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쇠고기 파동을 빌미로 반미 구호를 힘차게 외쳤던 촛불함성은 다른 사안에 함구함으로써 결국 어느 특정세력의 나팔수에 불과한 꼴이 됐다.
김정일이 촛불시위대의 난동에 ‘멋져버려! 멋져 버려!’를 되뇌이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을 생각을 하니 등골이 오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