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대중 前 대통령의 6일간의 국장(國葬)이 끝났다. 민주화 운동과 남북 화해의 큰 족적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가슴 속에 오래 기억될 고인을 이제 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평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주말 어떤 출향인으로부터 국장 중인데 성주에 혹시 분향소가 설치돼 있는지에 대한 문의를 받았다. 일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망설여졌다. 분향소는 커녕 국장 기간 내내 성주는 축제 분위기로 들썩거렸기 때문이다.
18일 전직 대통령의 서거 후 전국 각지에서는 정파와 계층을 초월하고 수십만명이 애도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또한 지자체와 단체는 각종 축제와 행사를 축소하거나 연기함으로써 경건하고 차분한 장례 의식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예(禮)를 갖추었다.
그런데 성주군은 특별했다. 지난 18일, 19일 양일간 저탄소 녹색성장 실천 결의를 다짐하는 성주·고령·칠곡 266㎞ 자전거 종주행사가 버젓이 열리는가 하면, 21일에는 역시 3개군 한나라당협 당정회의가 열렸다.
두 행사 모두 지역구 의원의 주관이다 보니 3개군의 각 기관단체장이 총 출동했고, 행사를 알리는 불법 현수막들과 풍물패의 축하 공연까지 온통 축제분위기 일색이었다.
물론 시의성과 예정된 행사이니 만큼 연기가 불가피함은 주지하고 있으나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그만큼 긴급하고 중요한 행사였을까.
각 기관단체장이 흔히 사용하는 인사말이 있다. “예로부터 성주는 효와 예를 중시하는 유림의 고장이며 명현을 배출한 선비의 고장으로써…”라는 구절이다. 본지는 당적을 가진 적도, 고인의 정파를 지지한 적도 없지만 부끄럽고 민망해진다.
행정적 절차에 의해 조기가 게양되고 공무원들은 근조(謹弔)가 새겨진 검은 리본을 달기는 했지만 진정한 국장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작은 분향소라도 마련했어야 했다. 그도 아니라면 장례 기간 중 유난스러웠던 행사는 조정이 필요했다.
경북도내 분향소 설치는 구미, 포항, 안동 등 여섯 곳에 불과해 군이 비난받을 사안은 아니지만 평소에 강조해 오던 ‘유교문화에 뿌리를 둔 선비의 고장’에 걸맞은 처신이 지극히 아쉬운 대목이다.
이래저래 우리는 슬프다. 정치와 이념에 매몰돼 분향소 마련 제의조차 눈치봐야 하는 지역 지도자들의 의식이 슬프고, 부당함을 지적하고 직언을 서슴치 않는 올곧은 충신(忠臣) 혹은 시민단체 하나 없다는 것이 또한 슬프고, 바른 길로 인도하고 조언해 주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 더욱 슬프다.
용서와 화합을 강조한 고인의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며, 행동하는 양심으로 선의 편에 서는 것이 지역 일꾼의 과제라는 것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