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남성으로서 한국의 역사상의 여성을 생각할 때에 황진이만큼 매력에 끌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 중국의 양귀비와 애급의 클레오파트라와 더불어 세계의 3대 미녀라고 해서 손색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에 필자는 한국의 황진이가 어떠한 여성인가에 대하여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황진이의 인생을 두고 말할 때, 그는 서출의 신분이라는 점에서 양귀비처럼 왕(중국의 현종)의 총애를 받은 여성도 아니고, 클레오파트라처럼 여왕도 아니다. 황진이는 그의 어머니 진현수가 맹녀(盲女)로서 아버지 황진사의 서녀였으면서도 조선 제일의 여성을 꿈꾸어 타고난 미모에 詩, 歌, 樂, 舞, 書를 겸비하여 徐花潭 朴淵瀑布와 더불어 松都三絶(고려 수도 개성의 삼대 명성)로 불리었다.
그는 官妓가 되고자 면접고사를 쳐서 합격했는데 그의 신체검사관은 말하기를 "앵두는 日出之光에 복숭아는 明堂吉山이라"고 그의 아름다운 육체미를 극찬 묘사하였다. 당시 官妓는 예술인 겸 공무원으로서, 歌舞 詩畵를 잘 익혀 외국 使臣을 맞아 酒色으로 접대하였다. 황진이의 신분은 그 월급으로는 從九品에 준해 지급되었고, "기생 잘 하면 科擧 及第보다 낫다"고 말할 정도였다.
황진이의 이야기를 할 때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황진이와 서화담의 만남과 대화이다.
황진이의 미모와 재색에는 그 어떤 남자도 다 지조를 잃고 넘어졌지만, 오직 한 사람이 자신의 지조를 지킨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소위 송도삼절 중의 하나인 서화담이었다. 그 대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전해 내려온다.
그의 미모와 시가로 지족선사와 벽계수의 기개를 꺾은 황진이는 어느 비오는 날 밤에 산중의 우거에서 수도 중에 있는 서화담을 찾아가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하였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제가 탐나지 않습니까?"
"자네의 고운 몸도 곧 흙으로 변할 걸세"
"만일 선생님께서 젊으시다면 저를 취하시겠지요?"
"그럴지도 모르지. 나도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니까"
"저를 위해서 춘기(春氣)를 깨우십시오" 하고 옷고름을 풀자
"허허허, 그래도 나는 아닐세"
"선생님, 저는 이제부터 선생님을 가슴에 모시고 살겠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든 저는 늘 선생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건 제 자유입니다"
"그렇기는 하네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눈으로 마주치고 호기와 흡기로 기(氣)를 나누다가 마침내 황진이가 일어나서 서화담에게 자기가 송도 명기 명월인데 큰 죄를 지었다고 말하면서 큰절을 하였다. 황진이의 항복이었다. 지족선사를 파계 시키고 벽계수의 극기도 넘어뜨렸지만 서화담만은 넘어뜨리지 못하였다.
황진이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곡을 하는 대신 노래를 부르고, 무덤을 만들지 말고 큰 길에 묻어 주세요. 세상을 희롱한 죄를 씻도록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