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난 며칠 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포스코 미술관에서 "梅花피어 천하가 봄이로다"전(展)을 보았다. 우리나라 화투에도 2월 매조로 매화꽃이 그려져 있다. 선조들이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예부터 내려오는 말이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나 언 땅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는 이른 봄을 알리는 전령이다. 한파 속에서도 피어나는 매화는 강인한 생명력과 인내, 불굴의 정신을 상징한다. 올해 열리는 고미술 매화 전시에는 조선 중기 묵매의 한 전형을 일군 설곡 어몽룡의 매화도는 거센 풍상을 이겨낸 듯 부러진 고목에서 하늘을 향해 곧게 돋아 오른 햇가지 끝에 맺힌 꽃봉오리는 선비들의 의연하고 강건한 기개를 묘사하는 그만의 표현기법이다. 정약용의 장남 정학연의 매화 연작 30수, 풍속화의 대가 단원 김홍도의 매화 그림, 조선 후기의 표암 강세황, 소치 허련, 청량한 달빛 아래 눈처럼 희고 고운 자태로 은은한 향을 퍼뜨리는 월전 장우성의 야매도(野梅圖), 김천 출신의 제담 배렴의 백매도, 매조도가 전시되었고, 눈 속의 설중매, 달빛 아래의 월매, 강가의 꽃 그림자를 드리운 매화에 취해 보았다. 특히 연안 이씨 집안의 양교영매첩 등 총 90여점이 전시되었다. 매화도와 매화첩, 매화시를 통해 지난 400여 년 동안 매화의 미의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볼 수 있다. 조선 중기의 매화는 꼿꼿한 자태라면 후대로 갈수록 선이 부드러워지고 색이 화려하며, 근대에 가까울수록 화가들의 자유분방한 개성이 드러났다. 이번 전시회를 보고 취미생활로 사군자 공부에 더욱 강한 충동을 느꼈다. 매화를 그릴 때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 줄기는 늙어 오랜 풍상을 겪은 듯 굵고(體古), 가는 것이 뒤틀려 괴이한 모습이어야 하며(幹怪), 새 가지는 말쑥하게 빼어나야 하며(枝淸), 어린 가지는 강건해야 하고(消健), 꽃은 기이하고 아리따워야 한다(花寄)는 것이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매화는 겹꽃이 홑꽃만 못하고, 홍매가 백매만 못하고, 가지마다 매화꽃이 닥지닥지 매단 것보다 성근 것을, 붉은 색보다 흰색을 고귀한 것으로 본다. 또한 오래되고 뒤틀리고 기이하게 자란 늙은 가지에 드물게 꽃봉오리가 맺힌 것과 눈 내리는 차가운 시절에 피는 매화를 제일로 쳤다고 했다. 매화는 소나무, 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 즉 추운 겨울철의 벗으로 일컬어졌으며,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라 하여 유교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인격인 군자를 상징하였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마르고 거친 굴곡으로 드러내는 나무, 소담스레 맑고 고운 꽃, 청아하고 은은한 향기는 그 외형만으로도 절개, 청빈, 결백의 삶을 쫓는 선비들의 이상형적인 군자의 모습과 닮아 있다. 또한 눈 속에서 추위를 견디는 강인함, 수천 가지 뭇 꽃들보다 앞서 개화하는 의연한 고결함이 바로 매화와 군자가 공유하는 덕목인 듯하다. 격동하는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담백한 아취를 풍겨낼 수 있는 초연함이 바로 매화의 모습인 것이다. 일찍이 선현들이 신선 같은 기풍에 온갖 꽃들을 물리치고 추운 이른 봄에 먼저 피는 것을 보고 선구자적 자세를 노래하였다. 눈 속에 피는 꽃은 남과 다른 불굴의 지조가 엿보이고, 추위를 무릅쓰는 것은 스스로 엄격한 청렴결백의 성정을 나타내며, 이른 봄꽃 중에 먼저 핌은 솔선수범의 우두머리로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 향기는 천리를 간다는 고사가 있고 아무리 어려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절조가 느껴지는 고독이 참 군자의 꽃이다. 퇴계는 매화분을 곁에 두고 매형(梅兄)이라 높여 불렀고 임종에 즈음하여 화분에 물주기를 유언하니 문득 흰 구름 한 점 뜨더니 백설이 내렸는데 선생이 운명하니 곧 하늘이 개였다는 일화가 있다. 아름다운 전설이 아닌가? 매화는 다른 꽃보다 먼저 핀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생존의 경쟁력을 갖고, 지조는 신뢰의 바탕을 두며, 검소한 자태는 배려의 힘을 실어주는 현대의 덕목으로 통한다. 또한 그 열매는 청매실, 홍매실, 매실주, 매실효소 등 인기가 높고 한류 문화상품에 꽃을 피운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매화향기와 고즈넉한 고택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매화가 서서히 피어오르니 천하가 봄이로다.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갈 새정부에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새 봄, 새 희망, 새 출발을 다지자.
최종편집:2025-07-09 오후 05: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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