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찌르는 따가운 시계소리를 당연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짓누르는 피로를 밀어내고 몸을 일으키시기 때문입니다
숨소리를 죽인 채 방문을 열고 나오시기 때문입니다
냉장고를 열고 가스렌지에 불을 붙이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조심스럽게 딸애의 방문 손잡이를 돌리시기 때문입니다
나즈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딸애의 이름을 불러주시기 때문입니다
눈을 비비며 짜증내는 딸애의 등을 토닥거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김이 피어오르는 밥을 정성스레 담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딸애의 숫가락질을 보고 미소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흐트러진 옷깃을 매만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차갑게 나가버리는 딸애에게 밝은 목소리로 잘 다녀오라 하시기 때문입니다
급히 뛰어가는 뒷모습을 창문 너머로 안쓰럽게 바라보시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발을 떼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걱정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주기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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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의 꿈'으로 상징되던 고교시절은 이제 학생들에게 잊고 싶은 고통의 시간이 되고말았다. 살인적인 입시 경쟁은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혼자 살아남기' 위해 거쳐야 할 통과의례쯤으로 여기게 됐지만, 자식을 입시생으로 둔 엄마는 '죄인'이 되어 마냥 조심스럽고 살얼음판 밟듯 한다.
그러나 이 시가 감동적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엄마의 믿음이 튼튼하게 이어져 있다는 데 있다. 하루하루의 반복된 삶이 괴롭고 지겨워 아이는 짜증을 부리지만, 실은 엄마가 자신의 투정을 언제나 받아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다녀오라"는 조심스런 엄마의 인사에 대꾸도 없이 차갑게 문을 나가버리면서도 아이는 엄마가 창문 너머로 자신이 길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전송하고 있음을 뒤돌아보지 않고도 느끼고 있다.
라는 구절의 반복으로 이루진 단순한 구조를 가졌음에도 신뢰의 따뜻함이 눈시울에까지 젖어드는 아름다운 시이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이미 입시지옥의 긴 터널을 통과했을 이 착한 아이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꾸만 궁금해진다.
(배창환·시인·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