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삼월 삼짇날에 새벽부터 비가 내렸었다.
아침 일찍 화실을 출발해서 비를 맞으며 북촌길을 산책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나 또 다시 화실에서 삼짇날을 맞게 되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작업을 하느라 집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우연 이 겹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도 북촌마을 길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청계천 북쪽을 북촌 이라하고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이곳 북촌에는 왕족과 지체 높은 양반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양력으로는 4월 중순으로 접어들었는데도 며칠 전 부터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다소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늘은 맑고 봄기운은 사방에 완연한 듯하다.
안국역을 지나 감사원으로 이어지는 재동 길 옆 에는 헌법재판소가 우뚝 서 있다.
헌법재판소가 있기 전 창덕여고 자리였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어떤 분의 북촌에 대한 글을 통해서 이곳에 있는 백송(白松)은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가 심었고 그 뒤 개화파인 홍영식이 이집을 샀는데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처참하게 죽게 되고 집은 약탈을 당하고 조선총독부에 몰수되었다 한다.
그 뒤 1885년 3월, 미국선교사 알렌(H.N. Allen)에게 고종이 이집을 우리나라 최초의 병원으로 허가하여 제중원이라 하였고 훗날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이 되었으며 세월이 흘러 1910년에 경기여고가 문을 열었다가 해방 후에는 창덕여고가 들어왔고 다시 지금의 헌법재판소가 자리를 잡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송은 그저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20여 년 전 지금은 굴지의 법무법인 대표로 있는 고향친구가 판사시절 이곳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가끔 만나 인사동에서 식사를 같이 한 기억도 있다.
작년 삼짇날은 비도 오고 해서 정독도서관 쪽으로 갔다가 바로 인사동으로 돌아왔었는데 오늘은 삼청공원까지 가기로 했다. 걸음을 재촉해서 재동 사거리를 지나 돈미약국을 끼고 왼쪽 골목으로 올라가는데 원로화가 석당 선생님의 2층집이 눈에 들어온다.
직접 그림을 배운 사제지간은 아니지만 나와는 그 이상으로 각별한 인연으로 지내는 분이다. 얼마 전 신장결석 수술을 받고 입원한 적도 있었는데 건강하게 오래도록 우리 곁에 계셔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옥이 줄지어 있는 언덕을 오르면서 보는 모습은 어딘가 획일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이집들이 조선시대의 전통가옥이 아니라 일제시대에 지어진 오늘날의 아파트와 같은 집단주택 단지이기 때문이라니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선시대 전통한옥은 그 숫자가 얼마 남아있지 않다고 하는데 소중하게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어야 하겠다.
오랜만에 들르는 삼청공원은 옛날이나 크게 달라지진 않았어도 제1 매점이 있던 자리는 숲속도서관을 만든다고 공사 자재와 모래가 잔뜩 쌓여있다.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들이 예전 그대로이다. 길옆으로는 개나리가 활짝 피어서 노란 색깔을 뽐내고 있고 진달래도 만개해서 이른 아침부터 봄을 실감하게 한다.
40년 전 나는 잠시 이 동네에 산 적이 있다. 판서가 8명이나 났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팔판동의 소격파출소 건너편 쪽이었다.
아침마다 운동을 하고 칠보사 밑에서 약수를 뜨러 다니던 추억이 새롭게 느껴지는데 지금까지 동네모습이 많이 변하지 않아서 참 정겹다. 깨끗한 물이 졸졸 흐르고 맑고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조용한 동네가 나는 정이 들어서 나중에라도 언젠가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뒤 결혼을 하고 얼마간 한옥에 세 들어 살다가 잠실로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하였는데 십여 년 후 그 아파트를 팔았을 때 이곳에 집을 마련하려고 무척 애를 썼는데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구입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총리공관 건너편 언덕길로 내려가다 보면 전망이 상당히 좋다. 멀리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청와대도 보인다. 이 어려운 시기에 나랏일을 맡은 우리의 여성 대통령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나는 정독도서관을 지나 다시 인사동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찬란한 4월의 아침 햇살은 골목골목 환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어느 30대 작가의 `지금 북촌은 햇살 샤워 중이다라는 글귀가 생각이 난다.
작년 삼짇날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고맙게 생각한 고서적가게 `통문관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조금 내려오다 보니 눈에 띄는 간판이 하나있다.
`도채비도 반한 찻집?
도깨비도 아니고 도채비라니 참 재미있는 이름이구나.
수도약국 옆 정원표구사 사장은 벌써 가게를 열고 장사준비가 한창이다.
나와는 전부터 아는 사이로 예전에는 표구화랑을 했었는데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악세사리 장사로 바뀐 지가 꽤 오래되었다.
이처럼 고서화나 골동품 보다는 거의가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들어온 싼 물건을 파는 점포가 많다보니 인사동은 이제 인사동이 아니라 이상한 동네로 변해 버렸다.
얼마 전 모 TV에서 인사동을 3일간이나 집중적으로 취재해서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겉으로 들어난 외형적인 모습과 흥미위주의 취재방식보다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인사동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가게 세를 못 내서 쫓겨난 지업사와 필방, 화랑들, 그림 한 점 팔지 못해 화실 운영도 힘들어서 붓을 꺾고 떠나야만 하는 화가들의 얘기도 담았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수도약국을 지나 라이온스 건물을 바라보며 화실 쪽으로 가는 길은 공사가 한창 중이다. 무슨 꽃길을 조성한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전시행정의 표본이 아니겠는가?
올해도 삼짇날은 봄이 왔는데도 봄 같지 않고 차가운 날씨 속에서 맞게 되지만 그래도 이날부터 진정한 봄은 시작되고 상서로운 기운이 대지 위에 충만하리라 생각한다. 9월 9일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오고 호랑나비도 춤을 춘다는 날, 오늘, 남(南)인사마당에 판을 벌려서 진달래꽃을 따다 화전을 부치고 화면과 수면도 만들어 나누어 먹으며 노래도하고 춤도 추면서 새봄을 맞이하는 축제를 여는 진정한 삼짇날이 되었으면 더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