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상 오랫동안 역대왕조와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종교는 중국을 통해서 수용되었던 불교와 유교였다. 불교는 중국으로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로 유입되었고, 다음 유교도 중국을 통하여 백제가 먼저 받아 박사 왕인(王仁)을 통하여 일본에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교는 신라에 들어와 설총, 최치원 등의 위인을 배출하기도 하였으나, 다음 고려 왕조에 이르러서는 불교를 국교로 일관하다시피 하고, 유교가 융성하게 된 것은 근세조선(李朝)에 이르러서였다.
근세조선을 고구려 백제 신라와 정치적인 면에서 대조하여 볼 때 거기에는 몇 가지 특색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519년 27왕 중에 아주 포악한 두 사람의 군왕이 있어 무슨 `-조`(祖, 예 `태조`) `-종`(宗, 예 `세종`) `-왕`(王)으로 불리지 않고, `연산군` `광해군` 등의 비칭(卑稱)으로 불린 나쁜 왕이 둘이나 있었고, 조신(朝臣)들 사이에는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등으로 갈리어 서로 반목 세력다툼 등으로 당쟁을 하여,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이 일어나 많은 충신들이 모함을 받아 죽기도 하였는데, 그 가운데 잊을 수 없는 비극이 이조 중종 때의 성리학자 정암(靜庵) 조광조에 관한 것이다.
연산군이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충신과 선비들을 죽이므로 성희안 등 충신들이 일어나 연산군을 폐하고 중종을 왕으로 추대(1506년)하였다. 조광조는 왕을 받들어 충성을 다하였으나 그를 시기하는 자들이 조광조를 제거하고자 한 가지 사건을 만들어 낸 것이 소위 走肖爲王의 모함사건이다.
조광조가 왕의 신임을 얻고, 많은 백성들이 따르므로 그를 미워하는 반대파들이 조광조를
제거하고자 희빈들을 시켜 조광조가 왕이 되려 하고, 또한 백성들이 조광조를 왕으로 세우려 한다는 말을 퍼뜨리게 하고, 한편으로는 궁성 안의 나뭇잎에 走肖爲王 네 글자에 꿀을 발라 벌레들이 그대로 파먹게 하여, 마침내는 왕도 역신들의 말을 들어 마침내 조광조를 능주로 귀양을 보냈다가 사사(賜死)하게 하였다. 이 비극을 만들어 낸 네 글자를 풀이하면 앞의 두 글자 `走肖`는 그것을 합치면 `趙` 자가 되어 전체의 뜻은 趙가 왕이 된다는 풀이가 되는 것이다.
정암 조광조(諡號는 文正, 1482-1519)는 역신들의 모함으로 37세에 죽임을 당했으나(이를 己卯士禍라 하며, 조선시대 四大士禍 중 하나) 그 후 영의정이 추증되었으며, 공자묘에 함께 봉안되었으며, 이율곡은 조광조와 더불어 김굉필 정여창 이언주 4인을 `東方四賢`으로 숭배하였다. 그의 선비 충신의 자취는 지금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심곡 산 중허리에 큰 무덤으로 뚜렷이 남아 있으며, 매년 12월에는 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심곡서원에서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있다. 그의 무덤이 있는 그 아랫마을 `심곡`에는 그가 유생들을 모아 가르치던 `심곡서원`이 그대로 남아서 정암 선생의 유덕을 지금도 무언으로 가르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조 중기부터 백운동서원을 비롯하여 한 때 650여 서원이 있었으나, 1864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현존하는 것은 이퇴계의 도산서원 등 47개 서원뿐이며, 그 중에서 심곡서원은 조광조의 비극의 생과 더불어 그의 충절과 성덕을 웅변으로 말하고 있다. 서원은 오늘날로 말하면 대학에 해당되는 최고 교육기관이다(그 이상으로 최고의 유교교육기관인 명륜당과 공자의 위패를 모신 문묘로는 14세기에 설립된 성균관이 있다). 용인에 있는 심곡서원에서는 해마다 12월 정암 선생의 기일에 고유제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정암 선생 묘소 밑에는 행로에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옛날 어느 곳에든지 성현들의 묘역이나 거택 앞 통행로에는 말을 타고 가다가도 말에서 내려서 가도록 하마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것은 성현들에 대한 예절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필자는 지금 정암 선생의 심곡서원이 100m 정도 떨어진 마을에 살고 있으며, 하마비가 있는 지점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이 동네 이름은 `서원말`(서원 마을의 약칭)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마을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보이는 심곡서원! 그 서원을 보면서 정암 조광조 선생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2013.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