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조에 이르러 조선의 지배계급이 부패 분열의 길을 밟을 때,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0년에 천하를 통일하여 새로운 기축(機軸)으로 완전히 옮겨졌다. 조선은 그간 무비 기타가 해이하여졌음에 비해 일본은 오랫동안 국내 전쟁을 통해 무예·무기의 발달, 병졸의 정련함을 이루게 되었고, 더구나 유럽인의 내항으로 인하여 신무기(조총)가 수입되고, 각지방 해운업이 발달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권을 독재하고 전민중을 호령하게 되자, 지나친 망상을 일으켜 밖으로 조선과 중국을 노리게 되었다. 드디어 1592년, 선조 25년(임진년) 4월 13일, 15만 대군으로 조선 국내를 침입하고, 9000여 해군으로 해상에서 지원하게 했다. 그리하여 조총을 앞세워 2개월만에 조선반도 전역을 짓밟았다. 그러나 명(明)나라의 원군과 대열을 가다듬은 아군에 밀려 1593년 4월 18일 서울을 철수하여 남쪽으로 물러나면서 화평교섭이 시작되었다. 조선 8도 중 4도를 할양할 것, 조선 왕자 및 대신 12명을 인질로 보낼 것 등, 도요토미의 7개 요구조건이 이행되지 않자 1597년(정유년)에 다시 고니시와 가토를 선봉으로 조선반도 남부를 점령했다. 그러나 육지에서는 다시 남하한 명나라 군과 권율 장군의 선전으로 더 이상 북상하지 못하고,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하여 총퇴각을 하고 말았다. 이 전쟁은 전후 7년에 미쳤으며, 잃어버린 장병이 10여 만 명, 수많은 문화재가 불타고, 가져갈 수 있는 문화재와 보물은 눈에 띄는 대로 다 약탈해 갔다. 그리고 많은 남녀가 포로로 끌려갔다. 이들로 말미암아 일본에 전파된 도서, 활자 등 문물과 기술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도자기 제조 기술이었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을 오늘도 일본인들은 `야키모노 센소(陶磁器戰爭)`라고 부를 만큼 일본 도자기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7년 전쟁 동안 왜장들은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르는 도공을 납치해 갔다. 그 결과 일본의 도자기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 외무대신을 지낸 도고 시게노리는 1945년 8월 군부 반발에 맞서 일왕의 항복 결심을 끌어낸 정치인이다. 그의 고향 기념관에선 "종전 공작의 주역을 맡아 대업을 완성하고 일본국을 구했다"는 송덕비가 방문객을 맞는다. 그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의 후손인 한국계이다. 도고는 전범국 일본을 구하고도 자신은 A급 전범으로 20년 형을 받고 복역 중 사망했다. 전후 일본의 활로를 연 한국계 지도자는 도고만이 아니다. 임진왜란 직후인 1596년 일본에 끌려간 도공으로 일본의 도자기 종가를 이루게 된 심수관(沈壽官) 가문의 14대 후손이 `슬픈 열도`의 저자 김충식 (동아일보)논설위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토 씨가 하는 말이 놀라웠어요. 나한테 `당신네는 일본에 온 지 얼마나 되느냐`고 묻기에, 400년 가까이 된다고 했더니, `우리 가문은 그 후에 건너온 집안`이라는 거예요." 여기서 사토는 1964년부터 72년까지 최장수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를 가리킨다. 사토는 한국계 핏줄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도고와 같은 A급 전범 용의자였으나 사면되어 1957년부터 60년까지의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는 바로 사토의 친형이다. 그는 사토 성을 타고 났으나 양자로 가서 성이 바뀐 것이다. 결국 전후 일본 재건에 앞장섰던 두 정치인이 우리 핏줄인 셈이다. 그런데 기시 전 총리는 아베 총리이 외할아버지이다. 기시, 사토 전 총리 가문이 한국계라면 아베 총리도 한국계일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의 아버지이며 80년대 4기 연속 외무장관을 맡았던 지한파 아베 신타로도 한국계가 정착한 야마구치현 출신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방증해준다. 그런 그가 `비뚤어진 역사 인식` 바람을 선도하면서 국제 물의를 빚고 있으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논어에 `묵이지지(默而識之)`란 말이 있다. "말없이 기억한다"는 뜻이다. 심수관 14대는 아베 총리의 외종조부인 사토 전 총리가 자신의 집안에 비전되어온 내력을 밝히면서 그 자리에서 써 준 이 默而識之란 휘호를 30년이 넘도록 바로 그와 만났던 방에 걸어놓고 있었다. 사토는 그에게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의미"라고 뜻풀이를 해주고 떠났다고 한다. 낮선 땅에서 새로 뿌리를 내리기에 안간 힘을 써야 했던 한국계 후손들의 비애가 넘실거리는 감이 짙다. 정치란 냉혹한 현실이다. 국제정치도 마찬가지다. 핏줄을 돌아볼 겨를조차도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베 총리는 잠시라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외조부 사토 집안의, 심수관 집안의 默而識之가 무슨 의미인지를! 1993년 일본정부 대변인인 고노 관방장관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는 걸 인정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이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현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폐기 또는 수정하고,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강한 일본이 되도록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을 `자기파괴적 수정주의`라고 했는데, 이것은 자기파괴가 아니라 `일본파괴`인 것이다. 1998년의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의 바탕인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제2항에 "오부치 총리는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고 했는데, 사회민주주의자 무라야마의 정치적 성과를 말살하려는 것은 보수의 본능적 반응이라 치더라도 자민당의 정통계보를 잇는 선배 총리인 오부치가 서명한 선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베 총리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여 정식 군대와 상징이 아닌 국가원수로서의 `천황제도`가 부활된 일본을 만들겠다는 정치적 야망에 사로잡혀, 국제협약과 보편적 가치를 무시하는 망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 일본을 고립된 불량국가로 후퇴시키고 있다. 그래서 세계 여론이 아베의 국수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권회복의 날`이란 것을 만들어 두 손을 번쩍 들고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 사진을 봤다. 지난 12월에는 미야기현의 항공자위대 기지를 방문해서 곡예비행단 `블루 임펄스`를 시찰하면서 `731`이라는 편명이 적힌 훈련기의 조종실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포즈로 사진을 촬영한 것도 봤다. `731`은 2차세계대전 당시 최소한 3000명의 중국·한국·몽골·러시아인을 실험에 동원해서 통나무처럼 희생시킨 인간생체실험장이었던 하얼빈의 731 세균전 부대를 연상시키는 숫자이다. 이에 대해 미국 외교가에서는 2차세계대전 최대의 비극으로 꼽히는 731부대를 연상시키는 사진을 찍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며, `믿을 수 없는 행보`라고 비판했다. 14일 워싱턴의 정치·외교 정보지 넬슨 리포트는 "731이라는 숫자가 전면에 부각된 아베 총리의 사진은, 독일 총리가 재미로 나치 친위대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것과 동급"이라며, "독일에서는 나치 유니폼 착용이 불법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도덕적 반감 때문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썼다. 제니퍼 린드 다트머스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731부대를 끌어내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의 눈을 불타는 꼬챙이로 찔러버리는 것"이라며, 지독하게 도발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국제사회에서는 아베 정부가 `전범 무죄론`을 제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일본의 전쟁 범죄는 국제적으로 명백한 사실이다. 허버트 빅스 미국 빙헴턴대 교수가 쓴 `히로히토 평전`에 의하면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 2000만 명이 희생됐다. 침략전쟁 과정에서 일왕 히로히토는 화학무기(독가스) 사용을 375회 이상 허가했다. 난징 대학살 피해자는 30만 명이나 된다. 이래도 "침략의 정의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더욱이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역사는 침략의 역사였다. 이렇게 전쟁을 일으키고 주변국을 침략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일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에 입각해 총 한번 쏘지 않은 지난 66년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평화헌법을 개정해 국방군을 창설하고, 방위예산을 늘여 전쟁할 수 있는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고?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되지도 않는 말을 하면서, `다케시마의 날`을 국가 행사로 격상시켜 도전을 하다니!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부끄러운 줄 알라. 그곳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적 장소요, 수많은 전범과 침략전쟁 전사자들을 구국의 영웅으로 현창한 곳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곳의 참배는 침략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퍼포먼스인 것이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나치 범죄에 대해 독일은 세대에 이어 영원히 책임이 있다"고 하며 나치 범죄 청산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2차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교도관으로 일한 93세 노인을 얼마 전에 체포 구금했다. 일본의 GDP는 독일의 1.7배요, 세계 3위의 경제 강국이면서도 독일과는 달리 주변으로부터 국력에 걸맞는 존경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라. 양식 있는 사람은 다른 이가 겪는 고통을 미루어 짐작해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자료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군자표변(君子豹變)`이란 말이 있다. 표범의 털가죽이 아름답게 변하는 것처럼 군자는 자기 잘못을 고쳐 선(善)으로 향하는 데 신속하다는 뜻이다. 그놈의 핏줄이 무엇인지, 미워할 수만 없는 마음 어찌하랴. 나는 아베 총리가 `군자표변`하여 역사상 존경받는 이름으로 남기를 바란다.(2013. 5. 20)
최종편집:2025-07-10 오전 11: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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