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9월 20일. 우리 8사단 21연대는 강원도 양구 벽산으로 이동해서 넓은 들판에 연대본부 진을 쳤다. 미군 부대도 가까이에 있었다. 전방에서는 하계 공세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이곳 50리 후방은 아주 평온해 보인다. 우리가 미군 캠프에 가서 그들이 상영하는 영화를 함께 보기도 하고, 흑인 병사들이 우리 진영에 잠입해서 세탁부 아주머니들의 천막 자락을 쳐들고는 일본에서 배운 말로 "스꼬시, 스꼬시(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우리한테 들켜서 달아나기도 했다. 오늘 오후에 이건명 중사와 바람을 쐬러 나갔다. 저 멀리 들판에서 미군 한 사람이 소를 타고 다니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된 소일까? 의아해하고 있는데 물방앗간 가까이에 한복 차림의 한 여인이 보따리를 들고 소 있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여인을 보자 그 미군이 소에서 내려 여인을 끌고 물방앗간으로 들어갔다. 이 광경을 본 우리는 격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 중사, 여기 있어. 내가 총 가지고 올게." 그렇게 말하고는 이 중사가 천막으로 뛰어가 곧 칼빈총을 가지고 와서 같이 가자고 했다. 물방앗간 쪽으로 가고 있는데, 벌써 속전속결로 일을 마친 후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여인은 소를 몰고 서쪽으로 가고, 미군은 자기 캠프 쪽으로 걸어갔다. "저 새끼 당장 죽여버릴 테야!" 흥분한 이 중사는 칼빈총 안전장치를 풀고는 미군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미군 캠프는 거기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이 전쟁 판에 어디서 총소리 한방 나봤자 그것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사람도 없다. 착한 사람도 비명에 죽어가는 판인데, 나쁜 놈 하나쯤 죽여봤자 양심에 거리낄 것도 없다. 그러나 내 경우는 달랐다. 일이 잘못되어 문제가 되면 군대를 피난처로 삼아 지금까지 공들여온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이 중사!" 하며 그에게 달려갔다. 총을 빼앗으며 내가 쏘겠다고 했다. 빼앗은 총을 들고 그대로 서있으니까 이 중사가 총을 도로 빼앗으려 했다. 극도로 흥분되어 있었다. 그는 다혈질이고 의협심이 강하며, 막걸리에 밥을 말아 먹는 괴짜였다. 그러면서도 일단 붓을 잡으면 온 정신을 붓 끝에 쏟는 열정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상전계에서 상장 쓰는 일을 도맡아 했다. "이 중사, 우리가 참자. 저까짓 것 하나 죽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 뭐 있겠냐?" 분을 못 참고 펄펄 뛰는 그를 빌다시피 해서 겨우 데리고 돌아왔다. 천막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951년 11월 15일. 육군본부 사령실로 전속 명령이 났다. 인사과에서 환송 회식을 열어주면서 해준 격려의 사인 내용이다. "너 참 운 좋은 놈이야! 사지 전우 이건명." 그는 같은 수류탄 파편에 함께 부상을 당했다. 8사단이 중공군에 포위되어 많은 병력을 잃고, 우리 연대는 제천까지 후퇴했다. 5사단과 교대할 때까지 제천 전선을 사수하라는 작전 명령에 따라 연대본부에서 근무하는 모든 신병이 일선에 투입되었다. 인사과 소속인 이건명, 황두석, 금병록, 김금식, 그리고 나는 같은 분대에 배속되어 3일 동안의 격전을 치른 후에 1951년 2월 20일 밤 5사단 한 연대의 진영 들판에서 포탄 상자를 산더미처럼 쌓아 불을 지피고 주위에 누워 골아떨어졌다. 밤중에 "쾅! 쾅!" "기습이다!" 하는 소리에 깨었으나 얼굴을 덮은 불덩이로 눈도 뜨지 못한 채, 한쪽 팔을 흔들지 못하면서 덮어놓고 뛰었다. 이튿날 정신이 들어 눈을 떴을 때는 한낮이었고, 앰뷸런스에 실려 있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건명 일병이 싱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좀 어떠냐? 의무대 위생병이 그러는데, 너 참 `운 좋은 놈`이라고 하더라. 네가 부딪혀 넘어진 그 천막이 바로 의무대 천막이었어. 방한복에는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지, 팔에서는 피가 콸콸 흐르고 있지, 화상으로 눈도 못 뜨는 데다가 캄캄한 밤중이지, 조금만 빗나가 그 천막에 부딪히지 않았더라면 넌 어디선가 출혈로 죽거나 불에 굽혀 죽었을 거라고 했어. 너 밤낮 하나님, 하나님 하더니, 하나님이 도와 준 거야." "지금도 진행중, 정전 후에 또 만나자. 황두석." 우리의 아침 인사는 `진행중!`이었다. 정전회담이 `진행중`이니 힘내라는 뜻이었다. "원수를 사랑하라. 참호 속의 원수 금병록." 3일 전투 첫날 밤, 둘이 한 참호 속에서 밤을 보냈다. 내 혼자 불침번을 서게 해서 미안했다는 말을 늘 했었다. "사나이의 말은 곧 계약이다. 김금식." 문서 수발 업무를 맡아 비밀리에 나의 전출의뢰서 발송을 도와주면서, 자기도 후방으로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우리 다섯 사람은 1950년 12월 18일 21연대 인사과에서 만나 1년 동안 한 천막 안에서 일하며, 함께 먹고 함께 잠자고, 한 분대에서 함께 싸우고, 기합도 함께 받고,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지냈다. 고생은 해도 그때가 그립다. 아, 보고 싶어라 그들의 얼굴, 듣고 싶어라 그들의 목소리. 이건명, 황두석, 금병록, 김금식. (2013. 6. 5)
최종편집:2025-07-10 오전 11: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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