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론(論)
그들은
어떤 사전 약속조차 없이
부랴부랴 만나게 된 것이다
서로의 얼굴 마주 보며
뜨거운 소리 마냥 질러 대는 것이다
땅과 하늘이 껴안는다고
온 세상을 향해 마구 소리치는 것이다
하지만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심심해진 빗물은
마른 풀의 발등을 찾아가서 적신다
저녁나절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퍼져 가는 가로등 불빛
그 비좁은 부챗살의 틈과 틈으로 바라다보는
빗줄기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싣고 달리는 열차의 지붕 위로
마구 부딪쳐 튕겨지는
저 빗물 소리는 얼마나 정겹고 아늑한가
종일토록 창 밖을 내다보며
귓전의 빗소리 들으며
나는 쓸쓸한 내 마음의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을 받으려고 양은그릇 받쳐둔다
살아온 날들은 그저
쓰리고 아픈 세월의 연속
내 낡은 추억의 조각보 위로
빗물은 떨어져 내려
깊은 슬픔의 둑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