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정세는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위기-완화-재위기-재완화`라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1989년 프랑스 산업위성이 영변의 핵시설 사진을 공개하면서 북한과의 핵게임이 시작되었다. 북핵 문제 24년은 크게 3기로 나눠볼 수 있다.
제1기(1989-92). 북한이 `핵보유국의 비핵국가에 대한 핵위협 금지, 한반도 핵무기 철수, 대북한 핵무기 불사용` 등을 자국의 핵개발 중지조건으로 내세웠다. 협상 결과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표되었고, 그 후속조치로 한국에 배치된 미군의 전술핵무기 철수, 한미연합훈련 중단, 북한의 핵안정조치협정 서명 등이 이뤄졌다.
제2기(1993-2008). 1994년에 북한과 미국은 극적으로 `제네바 핵합의`가 이루어졌다. 함경도 신천에 경수로공사가 진행되는 등 합의이행 과정이 5~6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을 진행했다는 의혹이 커지면서 중단되었다. 2005년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이 나와 1년 동안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중유를 5만톤씩 제공하고 북한의 영변 5MW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합의이행 과정이 있었지만, 북한의 1차핵실험으로 파기됐다. 북한은 3년 뒤 2차 핵실험을 했다.
제3기(2008-2013).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합의한 `10·4남북정상선언`을 부정한 것이다. 이로 인한 남북관계 파탄으로 2007년의 북한 비핵화 합의는 그 이행동력을 상실했다. 지난해 북한과 미국은 다시 `2·29합의`를 내놓았다. 우라늄 농축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사찰단 북한복귀, 핵·미사일실험 유예 등이 포함되었지만 합의는 곧바로 깨어지고,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했다. 지난해 5월 북한은 헌법을 개정해서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고 올 2월에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김정은은 지난 3월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제국주의자들의 압력과 회유에 못 이겨 이미 있던 전쟁억지력마저 포기했다가 침략의 희생물이 되고 만 나라들의 교훈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리비아의 길을 결코 가지 않을 것이다. 이로써 24년간의 비핵게임은 끝났다.
대다수 여론은 북한이 긴장을 조성하는 시끄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위기해결의 관건은 북한이 비이성적 도발을 멈추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책임이 북한에만 있는 듯한다. 그렇다면 북한과 20여 년간 핵게임을 벌여온 미국에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 북한의 도발과 긴장 조성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북한의 잘못에 미국의 실책이 가려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위기국면에서 미국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첫째, 큰 틀에서 볼 때 미국은 `아시아회기`전략을 펼치는 데 있어서 북한을 적절히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 적당히 도발적인 북한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 의미를 부각시켜준다. 미국의 북한 `적대시 정책`은 단순히 북한이 미워서가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적`으로서의 북한이 필요한 것이다. 북한의 위기 조성은 오히려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는데, 미국은 남북한이 갈등과 충돌을 일으켰을 때, 싸움을 말리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마어마한 군사력을 동원해서 한미연합훈련을 전개해 북한을 겁주었다. 미국은 세계 초대강국으로서 약소국가의 안전관을 역지사지의 자세로 살펴보아야 한다.
셋째, 미국의 핵확산방지 정책은 일관성과 형평성을 잃었다. 미국은 IAEA를 탈퇴한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를 묵인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미국에 의해 군사독제국가로 불리면서 핵무기개발로 제재를 받았으나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 파키스탄의 지원이 필요하게 되자 파키스탄에 대한 핵제재를 철회했다. 인도가 핵무기를 개발할 때 미국은 기술적 제재를 가했지만 2008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그 제재를 철회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북한도 언젠가는 핵보유국으로 승인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받으며 존중받기 위한 시도라고 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원한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기 전에는 어떠한 대화도 없다는 것을 천명했다.
미국이 책임 있는 대국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을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위기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바로 `냉전구도`이다. 이 냉전구도는 북한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핵심에 미국이 있다.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해법도 찾을 수 있다.
미국이 합리적이고 분별 있게 행동한다면 현 위기상황을 쉽게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전쟁이 아닌 존중을 바라고 있다. 지금은 대화할 때이다. 긴장을 낮추고, 대결국면을 피하고, 비현실적이거나 굴욕적인 요구들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다른 국가들에게 `좋은 행동`을 하라고 설득하려면 그들을 내 마음대로 바꾸어 놓으려는 `나쁜 정책`부터 수정하는 것이다.(2013.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