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약대를 졸업한 둘째 딸애가 삼덕동에 약국을 처음 개업했다. 나는 딸애가 어려운 약대를 졸업해서 약사가 된 게 기특하고 영업이 잘되어서 기분이 좋아서 매일 딸의 약국에 가서 청소도 해주고 다른 일도 도와주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딸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다가 구석 쪽으로 가며 나를 피했다. 나는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참고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저의 동무 강윤애가 직장을 그만두고 스님이 되어 절에 갔다고 했다. 윤애는 딸과 경북여고 동창생이었고 제일 친한 친구였다. 그래서 가끔 우리집에 놀려고 오기도 했다.
딸애는 약대를 갔고 윤애는 문과를 택해서 둘은 다른 길을 택해도 여전하게 사이가 좋아서 자주 만나기도 했다.
윤애는 공부도 잘했지만, 빼어난 미인이어서 어디에 가도 군계일학이었다. 어떤 인기 직종을 택해도 만인을 감동 시킬만한 잘생긴 얼굴이었다.
어느날 윤애가 우리집에 왔을 때, 나는 농담을 했다. "윤애의 신랑감은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남자일 것이리라" 하고는 웃었더니 "아버님 저는 오래전부터 정혼해 둔 곳이 있어요. 그 남자는 위대한 사람이에요" 하며 웃는 것이었다.
그런 윤애가 여고 교사직에 얼마간 몸담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머리 깎고 스님이 된 것이다. 윤애 부모의 절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딸의 환속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윤애의 어머니가 딸의 약국에 와서 그 이야기를 하고 울다가 갔기 때문에 딸도 울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도 윤애 부모와 각별히 친했다.
나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내일처럼 마음이 아팠었다. 그 후로는 윤애의 부모는 딸의 환속을 위해서 끈질긴 노력을 했으나 그때는 한술 더 떠서 윤애의 여동생까지 절로 데려가 버리고 행선지까지 감추어 버렸다. 설상가상의 지경에 이른 윤애 부모는 마음병까지 나서 병원신세까지 진 것이다.
이때 우리 부부는 윤애 부모를 방문해서 제안 한 가지를 했다. 윤애는 세속적인 부귀영화보다 위대한 포부를 품고 부처님 품에 안긴 것이니 낙담 말고 번민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부부와 같이 대구시내에 있는 절에 가서 불교의 이치가 어떤 것이지 알기도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다 보면 윤애가 출가한 이유도 알 거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윗대부터 불교를 믿었기 때문에 우리도 절에 부지런히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종교도 부인까지 했던 윤애 부모는 절에 가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딸애가 약국문을 닫아놓고 우리 부부를 저의 차에 태우더니 윤애의 집에 가서 윤애 부모까지 차에 태워서 어느 정신과 의학박사께 데려간 것이다. 그 박사가 윤애 부모에게 말하기를 우선 무조건 절에 가서 정신집중을 해서 참선을 해보자는 게 아닌가. 묵념을 지극히 하면 엔도르핀이란게 몸에서 많이 분비가 되기 때문에 딸을 잃은 고뇌가 즐거움으로 변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다음에는 딸이 우리들 두쌍 부부를 대구에 있는 어느 큰절의 주지스님께 데리고 갔다. 딸은 그 스님과 사전에 의논을 해 놓은 듯한 것 같기도 했다. 주지스님은 우리 모두를 향해서 차근차근 이야기 했다. 그는 윤애보다 공부를 훨씬 더 많이 하고 가정이 유한 사람도 불교에 입문한 사람이 수없이 많은데 윤애가 중이 되었다고 해서 딸의 신세를 망쳤다고 조금도 절망 말라고 했다.
그리고 불교의 이치에 대해서 상세히 이야기하고는 우선 윤애의 부모가 불교에 입문해 보자는 거였다. 불교의 진리를 조금이라도 터득을 한다면 윤애가 절로 간 이유를 이해할거라고 했다. 그 주지스님도 국내에서 제일가는 명문대학교를 나와서 외국유학까지 다녀와서도 중이 되었다며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또 한 가지는 윤애 부모가 집요하게 윤애를 환속시키려고 하면 윤애는 절대로 부모를 만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왜냐하면 딸이 더 높은 문을 향해서 가려는데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딸을 보고 싶거든 형식적이라도 불교신자가 된 것같이 해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한달 쯤만 그의 절에 와보라고 했다.
그 후 윤애 부모는 우리 부부와 같이 그 절에 갔었는데 열흘쯤 되었을까 그들 부부는 엔돌핀이 많이 분비되는 탓인지 몰라도 우선 화병이 고쳐지고 마음이 한없이 즐거워진다고 했다. 번민이 소멸되다 보니 그때부터 염불삼매에 빠져서 우리 부부보다 더 열성이 아닌가.
그 후 한달이 지나도 그만두지 않고 그만 그 주지스님의 가르침에 푹 빠진 불제자가 되었고 딸이 중이 된 뜻을 이해하고도 남겠다며 그 후 머리는 깎지 않아도 회색 법복까지 구해서 입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그들이기에 밤낮 그 절에 살다시피 열정 신도가 된 것이었다.
우리 딸과 윤애와는 서로 휴대폰 전화기로 내통을 했던 모양이었다. 윤애 부모가 열성 불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 딸로부터 전해들은 윤애 자매는 어느날 그들 집에도 왔고 우리집에도 찾아왔었다.
깨끗한 회색법복을 입은 그들 넷의 불제자들이 평온하고 밝은 얼굴로 우리 부부를 향해서 합장배례를 할 때 우리 부부와 약사 딸애의 심정은 마치 열반에 든 듯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