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유구한 반만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자랑하여 왔다. 그러나 그 역사를 더듬어보면 부끄러운 시기가 많았고 잊어버리고 싶은 사건들이 허다하였다. 우리나라가 수난을 당할 때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은 근본적인 큰 원인은 국론 분열이었다.
국제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치된 국론과 단결력으로 대처해도 부족할 형편인데 국가의 힘이 갈라지고 국내적인 혼란 때문에 국책방향이 발전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추진되지 못 한다면 미래의 밝은 전망을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는 바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되새기면서 와신상담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임금이 청 태종에게 삼전도에서 三拜九叩頭(삼배구고두. 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땅에 두드리는 예)로 항복하고 두 세자를 인질로 보내고 많은 부녀자들도 끌려 보내는 치욕을 당했다. 이때도 국론은 주화파와 척화파로 양분되어 집중된 세력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 했다.
이 뿐만 아니다. 임진왜란은 어떠하였는가? 일본은 자주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 나타나 침략을 일삼았다. 이때 이이는 10만 양병을 주장하며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이도 반대파에 의해 좌절되었다. 또한 기막힌 사실은 일본의 전략을 탐지할 목적으로 통신사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을 보냈다. 이들이 귀국하여 보고 한 내용은 정반대였다. 황은 일본의 침략의도가 있다고 했고 김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렇게 반대인 이유는 황은 서인이고 김은 동인이라서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선조는 김성일의 보고를 받아들여 안일한 정책을 하였고 김성일에게는 관직을 주었다. 그러나 국가 장래를 위하여 충직한 보고를 한 황윤길의 이름은 그 이후 관직에서 사라졌다. 결국 대비 없는 정책으로 임진왜란을 초래하여 대 수난을 당했다.
물론 다양한 의견이 발전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론이 수렴되고 국가 정책의 방향이 잡히면 개인의 의견이나 일부 단체의 주장보다는 국익 쪽으로 힘이 모아져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이 길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강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고 싶다.
실망스러운 일은 우리나라가 수자원 공사, 농어촌공사를 주축으로 K-팀을 구성하여 태국의 12조 규모의 물 관리 사업 입찰에 참여하여 유리한 조건에 있어 고무적인 일인데 한국의 환경단체가 태국에 가서 한국수주 반대 운동을 한다고 하니 안타깝다. 시민단체가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정부에서는 이런 것을 보고만 있어야 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제 우리나라는 첨단 산업계에서, 스포츠계에서, 예술계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먼저 국익을 생각하고 국가가 선진화되고 강국이 되어야 한다는 단합하는 국민의식 없이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정착하기는 어렵지 않을까하고 우려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