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詩)가 나를 찾아왔지.//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고/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에서 나를 부르더군."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쓴 `시(詩)`라는 제목의 시다. 칠레의 소년 파블로 네루다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을 찾아온 시를 만났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는 평생 시와 동행했다. 그는 시를 쓰고, 시는 파블로를 만들었다. 그렇게 쓴 그의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위로와 용기를 주며 또 다른 시인을 만들어냈다.
그만큼 깊어지고 아름다워진 세상은 그에게 감사하며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여했다. `사랑의 시인`, `자연의 시인`, `민중의 시인`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르는 파블로 네루다는 그의 삶이 바로 시였고, 그의 시가 바로 삶이었다.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은 그가 존경했던 체코의 서정시인 `얀 네루다`의 이름을 따서, 16세 되던 해에 지방 일간지에 그 이름으로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그의 필명으로 굳어졌다. 그는 처녀시집 `황혼의 일기`를 1923년에 발표하고, 이듬해에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네루다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가져다준 출세작으로 최고 시인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다음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이야기다. 이탈리아의 한 작은 섬, 카프리스에 마리오 로뽈로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주민 모두가 어부인 마을에서 그는 고기잡이가 싫어서 이것저것 방황하고 있었다. 굼뜨고 병약한 마리오를, 남들도 자신도, 가장 무능한 사람으로 여겼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살아가던 그 섬마을에 어느 날 세상의 관심이 집중하게 되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가 칠레 군사 독재정권의 박해를 피해 이탈리아로 망명하여 그 섬으로 왔기 때문이다. 네루다가 그 섬에 도착한 날, 섬 사람들은 태어난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과 카메라를 보았다. 최고로 멋을 낸 마을 이장이 나가 네루다 부부를 정중히 맞이했다. 그 많은 보도원들이 떠난 뒤에도 섬 사람들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 중에 가장 흥분한 사람은 우체국장이었다. 전 세계에서 팬들이 보내는 네루다의 우편물이 폭주했기 때문이다.
`나 홀로 우체국`이었는데 당장 우편배달부가 필요했다. 마리오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글을 읽을 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네루다와 마리오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네루다에게 편지만 전해주고 그를 방해하지 말라는 우체국장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마리오는 차츰 네루다에게 다가가고, 점차 가까워지게 되었다. 가끔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마실 것을 주어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기도 했다. 궁금한 게 별로 없던 마리오에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 어느 날인가 마리오가 네루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유(隱喩)가 뭐에요?" "은유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것과 비교하는 거야. 예를 들어 `하늘이 운다`고 하면 그게 무슨 뜻이지? 비가 온다는 말 아닌가요? 맞아, 바로 그게 은유지.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반드시 `은유`란 놈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시인이 될 수 있으니까. "선생님, 저도 시인이 되고 싶어요. 시를 쓰면 여자들이 좋아하잖아요. 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감상해보게." "그럼 은유를 쓰게 되나요?" "그렇지."
시인의 말대로 마리오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주위를 감상했다. 하지만 그가 사모하는 그녀, 베아트리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편지는 매일 잘도 배달하면서, 정작 자신의 속마음 하나 제대로 배달하지 못해 쩔쩔매는 우편배달부 마리오, 그러더니 결국 시를 쓰고야 만다.
"그대의 미소는 나비의 날갯짓 같다"고 하고, "당신의 미소는 장미"라고 썼다. 이것들이 은유다. 드디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것과 비교하는` 방법을 깨우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섬에서 가장 무능한 청년 마리오는 시인이 되고, 그래서 베아트리체와 결혼하는 데 성공하고, 사회개혁가로 변해갔다.
마리오는 네루다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사람과 세상, 사물 그리고 이념에 눈을 떴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싹터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시는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자연에 대한 솔직한 느낌과 표현이 그 전제이다. 꼭 무슨 특별한 재능이라든가 논리와 교육적인 배경을 가져야만 시인이 되고 시를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네루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시를 만나자. 시를 쓰자. 시를 쓰면 그 소재가 되는 인간의 관계와 자연과 인간의 관계, 자연의 순리적인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발견하고 깨달아, 뇌의 퇴화를 막고, 사소함 속에서도 고마움과 즐거움을 얻게 된다. 시는 인생을 풍요하고 아름답고 여유있게 만든다. (2013.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