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화(시인)
두 사람 가만히 서서
저녁 종소리 듣고 있네요
종이 울리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버렸을 테니
잡아주는 손 얼마나 따뜻하겠어요
종을 치던 애띤 비구니
가만히 흔들리다가
두 사람 바라보고 웃네요
잠깐 드러났다가 숨어버린 하얀 꽃잎
어쩌면 파르르 떨리는 초롱꽃잎
간지러운가 봐요
파르스름하니 말금한 여자
고개 숙이고 얼굴 붉히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출렁
향기로워지는 저녁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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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의 저녁은 저무는 것들로 가득하다. 바람과 새들이 떠난 숲에서는 꽃과 풀, 나무들이 어둠을 타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이럴 때 저녁 연기라도 나즈윽이 깔리면 풍경은 더욱 적막해질 수밖에 없다. 움직임을 그친 시간 위로 저녁 종이 울리면서 발걸음을 멈춘(아니, 처음부터 멈춰 서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서로 잡아주는 손과 한 줄기의 웃음으로 이 따뜻한 풍경을 완성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저녁 운주사는 말의 사원이 아니라 침묵의 사원이다. ‘종을 치던 애띤 비구니’가 가만히 흔들리는 것이나 잔잔히 던지는 ‘웃음’, 그리고 어둠 속에 더 잘 보이는 ‘하얀 꽃잎’이나 ‘떨리는 초롱꽃잎’ 역시 침묵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 한 순간에 만난 아름다움을 시인은 시(詩)에 담았다.
(배창환/시인/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