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서나 그 나라 역사상에 애국자가 없을 수 없다. 한 나라의 애국자는 그 나라가 고난의 역사를 많이 가졌으면 가질 수록 더 많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시대가 인물을 낳는다"고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고래로 `동방예의지국`으로 알려져 왔다. `예의`라는 말은 동양에서 중시하는 전통적인 인간관계를 잘 지키는 것을 이르거니와, 부모 자녀 간, 임금 신하 간, 남녀 및 부부 간, 노소 간, 친구 간의 윤리를 잘 지키라는 것(소위 오륜의 도덕)을 의미하며, 그 중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도와 왕에 대한 충의를 잘 준행하라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그러한 면에서 훌륭했다는 것이다.
왕정시대의 왕에 대한 충의는, 현대국가에서 말하면 나라와 민족에 대한 국민들의 애국과 애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특별히 애국자가 많았거니와, 그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민족의 수난기에 나라를 잃지 않으려고, 또는 잃은 나라를 도로 찾으려고 국 내 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가 수 없이 많다. 그 많은 애국자 가운데서 안중근 의사는 대표적인 위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필자는 지난 6월 중국 하얼빈에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설립한 모 신학교 강의차 갔다가 마침 몇 년 전에 개관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보고 안중근 의사의 `위인됨`을 재인식 하였던 바, 이번 8월 29일 국치일을 당하여 애국자 안중근 의사와 그의 대적 이등박문을 그 위인(爲人)됨과 위인(偉人)됨에서 비교 고찰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爲人됨`이라고 말하는 것은 본래적으로 `사람됨`이 어떠하다는 것이고, `偉人됨`이라고 하는 것은 `훌륭함`을 말하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와 이등박문, 두 인물이 다 각기 자기의 나라에서 애국자인 것은 공통된 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그들의 생전에 이룩한 공적으로 따지면 36세의 차이가 있는 안중근 의사의 짧은 생애(32세로 순국)는 68세까지 산 고령의 이등박문과 비교할 수가 없다. 명치유신과 한일 강제합방의 일등공신, 초대 통감, 내각총리대신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이등박문은 그러나 그의 인격이나 사상에서 볼 때 안중근 의사와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등박문은 일본 한 나라를 위해서는 많은 요직을 거친 `높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그의 생각과 일을 일본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 nationalist) 이상을 넘지 못한 편협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웃나라를 우방으로 삼고 공동의 번영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화 함을 목적으로 침략을 하는 소위 패권주의가 그의 정책이요 전략이었다. 그는 마치 한 깊은 골짜기에만 머물러서 좁은 하늘만을 보고, 그 산 너머 큰 하늘 아래 넓은 세계가 있는 것을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의 인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는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는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큰 공적으로 알고 그러한 생으로 개인의 영달도 누리고 최고의 영광도 누린 인물이다.
이러한 이등박문에 비해서 안중근 의사는 20대 청년시절부터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운동에 투신하면서도 결코 국수주의에 머무르지 않고 서방의 패권주의적 침략주의에 대항하여 동양평화론을 주장하였고, 이등박문의 일본은 한국강제합방으로 동양평화를 깨뜨렸다고 하는 것이 법정에서 진술한 이등박문의 죄목이었다. 패권주의(hegemonism)가 흔히 국수주의와 결합하는 것과는 달리 평화주의(pacificism)는 바로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인도주의(Humanitarianism)의 실현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국가라는 권력구조가 형성되면서 강력한 독재자들의 패권주의가 전쟁을 일으켜 한 마디로 강대국의 침략의 역사 또는 어떤 독재자의 패권주의의 역사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의 히틀러, 이태리의 뭇소리니,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 등이 있었고, 일본에서는 근대의 이등박문, 그리고 현대사에서 태평양전쟁 소위 `대동아전쟁`이라고 사칭 미화한 전쟁을 일으킨 동조(東條)도 그 무리에 해당되는 것이다.
8월 29일은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패권주의 국수주의에 의해서 패망을 당한 것이 우리가 강국이 못 되고 한편으로 매국노들이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하여 나라를 팔아 넘긴 수치스런 날 즉 국치일로 일컫는 날이다. 이 날에 진정한 애국자요 평화주의자인 안중근 의사와, 그와는 반대로 일본의 국수주의자요 패권주의자인 이등박문의 삶을 비교해 보면서 교훈을 얻고자 한 것이다.(2008.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