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분노·울화 등은 여러 가지 마이너스 에너지를 발산하는 감정들이다. 그런데 인간이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뇌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지렁이를 밟으면 꿈틀거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통증을 느끼고 이를 피하려는 생존을 위한 반응이지, 미움이나 분노를 나타내는 행동은 아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증오나 분노를 관장하는 뇌의 부위는 편도체라고 추정된다. 이 부위는 감정 변화에 따라 행동이나 내분비계를 변화시키는 시상하부, 기억의 임시 저장 창고인 해마 등과 함께 변연계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 부위가 존재해야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매우 발달된 뇌를 가진 생물종이지만 뇌의 모든 부분이 한꺼번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진화과정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부위는 뇌간이다. 뇌간에는 연수, 뇌교, 중뇌 등이 포함되는데 소화·호흡·심장박동 등을 조절하고 반사작용 등을 총괄하며, 호르몬을 분비하는 등 생명 유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소뇌와 대뇌는 좀 더 발달된 행동을 조절하는 기관으로 진화과정상 뇌간에 비해서 나중에 형성된 부위이다. 소뇌는 운동을 조절하는 중추가 있어 우리 몸의 움직임을 제어하며, 대뇌는 생각·판단을 하는 사고의 근원이 되는 고등기능을 가진 부위이다.
변연계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매클린은 동물의 뇌를 진화과정에 따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첫 단계는 원파충류뇌로서 파충류에서부터 있었던 생명유지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이다. 뇌간의 구조가 여기에 속한다. 그 종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학습과 기억을 사용하여 정형화된 활동을 할 수 있다. 뇌간만 가지고 사는 파충류의 세상은 거의 조건반사 행동이 지배적이다.
다음 단계는 구포유류뇌로서 하등포유류에서 추가된 뇌의 부분이다. 대부분의 변연계의 구조는 여기에 속한다. 자신을 인식하며, 특히 내부 환경의 변화를 알아 이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며 원파충류뇌를 지배한다. 원파충류뇌에 쾌감·불쾌감의 감정이 더해진 것으로 `동물뇌`라고 불린다.
가장 발달된 단계의 뇌가 신포유류뇌로서 신피질에 해당하며 바깥 환경을 낱낱이 인식하고 이를 분석하는 부분이다. 이 부위는 처음에는 단순히 감정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부분에 지나지 않았으나, 점차 진화함에 따라 많은 정보가 모이고, 이에 따라 사물에 대한 분석이 가능해지고 정교해지게 되어, 결국에는 추상적 사고와 필요한 도구의 발명을 할 수 있는 단계의 인간의 뇌에까지 이르게 된 부분이다. `인간다움의 뇌`라 불린다.
따라서 사람의 뇌에는 이 세 단계의 뇌가 공존해 있으며, 서로 합동작용을 하여 모든 기능을 수행한다.
중추신경 중의 변연계는 약 2억 년에서 3억 년 전에 진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의 안쪽 부위, 즉 머리의 중심 부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포와 분노, 증오와 쾌락 같은 감정을 조절하는 곳으로, 임상실험 결과 변연계를 구성하는 편도체에 인위적으로 미소 전극을 삽입하고 자극을 가하면 그 즉시 격렬한 분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한편 중격(中隔) 근처에 자극을 가했더니 쾌감의 감정이 일어났다.
변연계는 진화상 어느 정도 `발달된 뇌`를 가진 생물종에서 나타나는 부위인데, 이는 증오라는 감정이 모든 생물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개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두뇌가 발달한 동물 축에 속하니 모든 생물체 중에서 증오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생물종이 바로 인간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신피질이 발달해서 고피질인 변연계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변연계가 느끼는 분노는 신피질이 이성으로 제어할 수가 있다. 즉 분노나 폭력의 표출은 인간이 아직 인간다움을 획득하기 전에 가졌던 `구시대적인 유물`이며 인간다움은 이를 제어하도록 진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너무도 이성적인 사람이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원시적인 동물뇌인 변연계에 의해 이성적인 뇌인 신피질이 어찌하지 못하고 왈칵, 부르르 너무도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본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고피질(변연계)에 의지하지 않고, 이를 지배하는 신피질의 명령에 따라 이성적으로 행동하도록 가르쳐왔으며,
그 행동이 그릇된 경우 `개 같은 놈`이라 했다. `동물뇌`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명심보감 계성편은 "관직에 있는 자가 경계할 일은 갑작스러운 분노다(當官者必以暴怒爲戒). 만약 아랫사람의 일처리에 못 마땅한 것이 있다면(事有不可), 마땅히 자세히 일을 살펴서 대처해야 한다(當詳處之). 그러면 사리에 적중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必無不中). 만약 갑작스러운 분노를 표출한다면(若先暴怒) 자신을 해칠 뿐이다(只能自害)"라고 했다.
증오를 누르고 분노를 가라앉히라. 증오는 동물뇌의 감정이요, 분노는 동물로의 퇴화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