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미군은 이라크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는 바로 그날부터 모든 방송은 마치 스포츠를 중계하듯이 생중계로 전쟁 상황을 보여주었습니다. CNN 아나운서는 전쟁에 동원된 미국과 영국의 신예무기가 얼마나 정확하게 목표물을 명중시키고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설명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TV 화면에서 목표를 향해 정확히 날아가는 미사일은 볼 수 있었지만, 그 미사일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는 별관심이 없었습니다. 반사적으로 조종사는 로케트를 발사했고, 곧 그 로케트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습니다. 적어도 7만 명에서 많게는 65만 명이라는 어린아이들, 민간인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대량살상무기의 증거는 끝내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1993년 북한의 핵개발 비밀 프로젝트가 발각되자,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른바 1차 북핵위기인데, 이때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정밀공격을 구상했습니다. 게리 럭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이 계획을 워싱턴에 보고했습니다. 북한이 전면전으로 대응할 경우 하루 만에 군인 20만 명을 포함해 수도권에서만 150만여 명이 사망하고, 개전 1주일 안에 미군과 남북한 병력이 최소한 100만 명이 사망하며, 민간인 사상자는 50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끔찍한 예측이 보고서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김영삼 정부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결국 이 계획을 중단시킨 것은 게리 럭 사령관이었습니다. 북핵의 역사는 위기-대화-합의-합의 후의 의견차와 불이행, 그리고 또 위기가 반복되는 역사였습니다. 1차 핵위기는 지미 카터의 방북을 계기로 북미간에 `제네바 합의`가 극적으로 타결되어 해소되었습니다. 영변 핵시설 폐쇄, 경수로 건설, 북미관계의 정치적 경제적 정상화가 그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에 북한이 핵개발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네바 합의는 파기되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몰아세운 2003년 1월에 북한은 유보한 NPT 탈퇴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2차 핵위기라 불리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열린 것이 6자회담입니다. 2005년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이 나와 1년에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중유를 5만 톤씩 제공하고, 북한의 영변 5MW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합의 이행이 있었지만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파기되었습니다. 2007년 6자회담이 진행되어 `2·13합의`가 맺어졌습니다. 합의 내용은 북한의 핵시설 폐쇄, 핵사찰 수용, 중유지원 100만 톤 상당의 경제적 지원 등이었으나 이 합의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북한은 2009년 5월에 2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지난해 북한과 미국은 다시 `2·29합의`를 내놓았습니다. 우라늄 농축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핵·미사일 실험 유예 등이 포함되었지만 합의는 곧 깨어지고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습니다. 지난해 5월 북한은 헌법을 개정해서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고 올 2월에 3차 핵실험을 단행했습니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3년에 걸친 비교적 순탄했던 남북협조의 시기는, 과거 냉전시대의 북진통일 등 한국 주도의 통일론을 접고 남북 두 개의 국가 체제가 공존하는 현실을 수용하며, 민족공동체의 복원을 통한 통일로의 평화적이고 단계적인 전진을 함께 도모한다는 통일방안의 확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어 북한이 두 국가 체제의 평화적 공존과 협력에 동조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유엔동시가입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평화통일로의 장밋빛 기대를 왜 북한은 핵위기로 무너뜨리고 남북공조의 틀을 깨뜨리고 말았겠습니까? 냉전 종식 직후의 세계에서는 미국이 유일 초대강국으로 등장했습니다. 아무리 남북간에 협조관계가 수립되었다 해도 북한의 체제의 안전과 존속은 궁극적으로 미국에 달렸으며, 그 미국으로부터 어떤 우호적 보장도 받지 못했던 북한으로서는 극도의 불안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듯 체제안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북한은 가장 효율적인 자구책은 핵무기개발이란 결론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대다수 여론은 북한이 긴장을 조성하는 시끄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위기해결의 관건은 북한이 비이성적 도발을 멈추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책임이 북한에만 있는 듯 말합니다. 그렇다면 북한과 20여 년간 핵게임을 벌여온 미국에는 책임이 없는 것이겠습니까? 북한의 도발과 위기조성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북한의 잘못에 미국의 실책이 가려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현재의 위기국면에서 미국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첫째, 큰 틀에서 볼 때 미국은 `아시아 회기(Pivot to Asia)` 전략에 북한을 적절히 이용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적당히 도발적인 북한은 동북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존재의미를 부각시켜줍니다.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세계적인 전략요충지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 미국의 배타성입니다. 미국을 보면 미국이 하는 일은 다 옳고, 북한이 하는 일은 다 잘못됐다는 이분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측에서 볼 때,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적이 없지 않지만, 미국으로부터 상응하는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안전 및 관계정상화, 평화조약체결 등 합리적인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두손들고 나오기만 기다린 것입니다. 셋째, 미국의 핵확산방지 정책은 일관성과 형평성을 잃고 있습니다. 미국은 IAEA를 탈퇴한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를 묵인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은 미국에 의해 군사독재국가로 불리면서 핵무기 개발로 제재를 받았으나,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 파키스탄의 지원이 필요하게 되자 핵제재를 철회했습니다. 인도가 핵무기를 개발할 때 미국은 기술적제재를 가했지만, 2008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제재를 철회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북한도 언젠가는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해법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북핵문제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입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체제 안전과 존속을 위한 방위용이지 선제공격용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개발해서 보유하고 있는 핵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15kt급으로 10여 기 정도지만, 한국이 그 우산하에 있는 미국 보유 핵은 1000배 이상의 위력을 가진 mt급으로 9400기 이상이나 됩니다. 그러니 게임이 될 수가 없습니다. 북한의 핵선제공격은 바로 그들의 자살행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베 일본총리는 집권 후 반년 동안 우익세력과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영합해 역사를 왜곡하면서, 2차세계대전의 뼈아픈 교훈을 부정하고 전후 평화질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역사반성 3대 담화` 즉,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수상이 교과서 문제로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겠다 한 것, 1993년 위안부관계 조사결과발표에 관한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 1995년의 무라야마 수상이 일본의 침략과 식민통치에 대해 사죄한 것을 재고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른바 `침략정의 미정론`을 역설하고 나섰습니다. 각료들과 정치인 170명이 2차세계대전 전범들이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도록 선동하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전쟁을 미화합니다. 이른바 주권회복일 기념행사를 성대히 치르면서, 침략전쟁 때와 같이 `천황폐하만세`를 부른가 하면, 군복을 입고 탱크 위에서 쇼를 하면서 군국주의에 대한 동경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1947년에 군국주의를 배제하고 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 한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려고 합니다. 일본은 1주일 안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재무장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과 북한에 대한 직접공격을 가능케하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의 밑그림이 미국의 양해하에 그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1905년 미국은 필리핀을 차지하는 대신 조선은 일본에 넘겨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망령이 떠오릅니다. 해방 직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 "미국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마라. 일본 놈 일어난다 조선사람 조심하라"는 경구가 새삼스럽습니다. 남과 북이 다함께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서로 손을 잡아야 합니다. (2013. 9. 17)
최종편집:2025-07-11 오전 11: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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