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샹송이 머무르는 프랑스여행을 딸과 함께 하게 되었다. 난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한다. 30년동안 조종사 생활을 하였지만 그래도 미련이 있나 보다. 장거리 비행일수록 그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모든 이들이 지루함과 답답함으로 주리를 터는데 그 여행의 문턱이 내게는 언제나 새로운 사고와 활력의 샘물이 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구름 위의 비정상적인 공간 속에서 뜻밖의 상큼한 조합을 이루고 여행의 참맛은 미지의 공간과의 조우에서 시작된다.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북경, 몽골, 모스코바를 경유 프랑스 드골 공항에 도착하는데 약 12시간이 소요되었다. 공항이름이 드골, 과연 프랑스의 자존심인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 프랑스 수도 파리에 도착하면 샤를 드골국제공항에 내리게 된다. 이 공항의 이름은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샤를 드골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더욱이 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대항하는 자유 프랑스 운동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에 패한 프랑스의 항복이 임박한 혼돈 속에서, 드골은 영국으로 망명해 스스로를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라고 선언했다. 그에게는 참모, 군대, 자금은 물론 국가도 없었다. 하지만 드골에게 이는 숙명이었다. 이후 4년 동안 그는 프랑스인을 결집시키고, 기회를 잡고, 책략을 펼치면서 자신만의 길을 나아갔다. 거만하고 비협조적인 그는 영미 양측에는 골칫거리였지만, 드골에게는 자기 자신이 곧 프랑스였다. 현대 프랑스의 이야기는 프랑스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를 들라면 프랑스인들은 루이14세와 나폴레옹, 드골대통령을 생각한다고 한다. 드골은 2차대전시 장군으로 구국전선에서 패망한 프랑스국민들의 힘의 통합을 이루어 독일군과 싸워 조국을 해방시켰고, 대통령으로서 전후 프랑스 재건을 위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훼손된 조국을 다시 열강의 반열에 복원시킨 정치인으로 프랑스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은 거인이다. 샴페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삼파뉴 지방의 변방, 콜롱베이마을은 인구가 불과 600여명이 모여 사는 작은 시골로 프랑스인들의 자존심, 드골대통령이 평범한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은 곳이다. 드골은 그의 유언장에서 장례식은 간결한 가족장으로 할 것과 대통령이나 각료, 외교사절들의 참배를 사절하고, 단지 2차대전 당시 조국의 해방 전선에서 생사를 같이했던 전우들만 참석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정부는 故人의 유지를 받들어 그가 생전에 자주 찾던 노트르담성당에서 종교의식으로 가족장으로 예식을 치르고 국립묘지 대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고향마을, 콜롱베이 공동묘지 그의 딸의 무덤 옆에 묻혔으며, 그의 묘비명에는 이름과 生歿기간만 남겨 달라는 유지에 따라 묘비에는 "Charles de Gaulle (1890-1970)" 만 남겼다고 한다. 그는 사후 어떠한 훈장이나 기념조형물도 받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에 드골의 생가나 기념관 묘역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정부가 예산을 지원하여 낭비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은 은퇴 후 조용한 시골마을을 기념공원으로 관광화하고 ,퇴임 후 수천억 원의 추징금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작금의 현상은 고향마을에 잠들어 있는 드골대통령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드골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그에게 지급되는 연금과 가족들에게 수혜되는 정부의 지원을 모두 받지 않고 "그 돈은 가난한 국민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은퇴 후 그의 생가를 관리할 경제적 부담으로 생가를 팔았으나 그를 존경하는 어느 기업인이 구입하여 다시 정부에 헌납, 지방정부가 드골 사후 문화재로 지정하여 현재는 드골기념관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은퇴생활은 집안에서는 항상 정장차림으로 규칙적인 생활, 식사시간까지도 어기지 않고 지켰다고 하며, 조용한 것을 좋아하여 가족들이 모이면 드골이 묻는 말만 대답하는 분위기로 자신도 말을 아끼며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는 비교적 건강한 은퇴생활을 유지하였으나 어느 날 의자에 앉아 TV로 저녁뉴스를 보다가 목에 통증을 느낀다며 갑자기 쓰러져 거인답게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콜롱베이 주민들은 한 시대를 살면서 족적을 남긴 위대한 거인 드골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의 상징인 로레인 십자가를 50m높이로 마을입구에 세워 이곳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볼 수 있도록 크게 십자가 밑에 드골장군이 영국에 망명하여 독일군 점령하의 프랑스국민들에게 보낸 有名한 연설내용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프랑스를 핵 무장시켜 열강의 반열에 올린 대통령, NATO를 탈퇴하여 미국의 자존심을 꺽은 드골의 콧대, 알제리를 독립시키고 큰 장애물을 제거한 지도자.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고 비젼을 제시하고 실천한 깨끗하게 살다간 프랑스의 自尊心 위대한 지도자 드골대통령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나라의 현 정치행태는 언제 변할 것이며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우는 위대한 지도자를 만날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하다. 위대한 지도자는 자기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가 말한다.
최종편집:2025-07-10 오후 05: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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