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8호에서 이어집니다.)
현정부가 인사와 경제, 소통 등 내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서도, 70%의 지지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대북정책에 있어 `퍼주기`도 `외면하기`도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해 거둔 점수라고 합니다. 곧잘 우리는 `퍼주기` `퍼주기` 하는데 우리가 북한에 얼마나 퍼주었습니까?
권영민 전 주독대사에 의하면, 전 서독총리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Ostpolitik)` 추진으로 동서독간 기본조약이 체결된 1973년부터 1990년 통일까지 18년간 서독이 동독에 지원한 금액은 574억 달러 규모였습니다. 이에 비해 지난 10년간 우리의 대북지원 규모는 10억 달러 정도입니다. 이를 개인 부담으로 환산하면 서독 주민은 1인당 매년 50달러 이상을 동독 지원을 위해 부담한 데 반해, 우리의 대북 지원은 1인당 2.3달러에 불과한 셈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퍼주었다고 하면 서독은 동독에 `쏟아 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독의 마지막 국방장관이자 현역 연방하원의원인 라이너 에펠만은 한국통일 문제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인데 권영민 대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 북한과의 교류를 늘리십시오. 이것이 바로 북한을 살리고 한국을 살리는 상생의 길입니다. 할 수 있는 한 무엇이든, 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주십시오. 식량이든, 소비재든, 의약품이든, 전자제품이든, 북한이 필요해 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주십시오. 이것이 결국은 한국에도 득이 될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특히 소비재가 부족합니다. 나는 사회주의 국가를 잘 압니다. 그 속에서 살았으니까요."
목사 출신으로, 지금은 기민당 의원인 그가 언뜻 `대북 퍼주기`로 비판받을 수도 있는 이런 얘기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60평생을 사회주의 아래서 살아온 자신의 경험에서 이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작은 접촉이라도 그 사회 내에 파장을 가져오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변화를 유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집권 권력층만 혜택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계속하면 결국 일반인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리입니다.
어쨌든 우리의 경제력이 북한의 40배나 되는 만큼, 먼저 나눔의 여유를 보여야 합니다. 개성 관광 길이 열렸던 2008년 초 버스를 타고 개성시내를 관광하던 남한 관광객이 행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어른들은 한결같이 무표정했지만 어린이들은 밝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습니다. 어른 세대에게는 희망을 걸 수 없어도 미래의 남북 세대에는 희망을 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북한 어린이들의 신장이 남한 어린이들의 신장보다 영양부족으로 10cm나 작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작년 12월 KBS `시사기획 창`은 `북한 자원을 지켜라` 기획에서 북한이 얼마나 엄청난 자원대국인지, 그 자원을 중국이 어떻게 빼돌리고 있는지 보도했습니다. 북한은 세계 최고 품질의 희토류 원소와 철강, 마그네사이트 등을 보유한 자원대국입니다. 측량된 지하자원만 4경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2013년 기준 113년치 한국정부 예산과 맞먹습니다. 좋은 시절에 대비해서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은 장삿속으로도 필요합니다. 통일비용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원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한반도 평화에 있습니다. 국민복지의 최선의 길도 평화에 있습니다.
평화에 길이 있습니다. 평화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 아닙니다. 퍼주는 것이 아니라, 쏟아 부어서라도 평화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쟁억지에 쏟아 붓는 것에 비하면 훨씬 생산적이고 저렴합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6:27-28).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는 셈이 됨이니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0-21). 사랑의 힘은 핵보다 강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신뢰구축과 지속가능한 평화 정착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다행한 일입니다. 더 적극적이고 파격적인 조처를 취해야 합니다.
1주일 후에 있을 이산가족 상봉은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실천적인 일보를 내딛는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은 현정부 들어 북측이 자의적으로 문을 닫고 열었습니다. 반면 이산가족 상봉은 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측에 공식 제안한 것을 계기로 3년 만에 성사된 성과입니다. 임기 중 다양한 남북 현안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실질적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인적 만남은 통일의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독일 통일의 시작도 서로의 만남에 있었습니다. 브란트 당시 총리는 소위 `접근을 통한 변화 (Wandel durch Annaherung)`를 추구했습니다.
서독 정부는 서독을 여행·방문하는 동독 주민에게 1인당 100마르크의 환영금을 비롯, 여행경비, 의료 지원 등을 제공했습니다. 헤어진 가족들의 만남은 분단의 이질감을 해소하고 통일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언론도 만남에 일부 대가성 금전이 제공되는 것 묵인했습니다. 주민들의 원초적인 열망을 충족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이러한 서독의 `작은 걸음의 정책 (Politik der kleinen Schritt)` 은 독일통일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동독 지도부와 주민이 서독에 대한 적개심을 풀고 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 각종 교류 협력 협정 체결에 적극적인 호응을 하도록 유도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관계는 언뜻 보면 일방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혹은 충분한 동일 수준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상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은 향후 정치적 상황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석맞이 또는 설이라는 이벤트 성격에 따른 일과성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연중 상시 상봉이라는 제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남북 이산가족의 만남이라는 이 `작은 걸음의 정책`이 로렌츠의 `나비 효과`를 일으켜 한반도 통일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평화를 만들어내고 평화를 지키는 역군이 됩시다. 이 일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합시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만 일하지마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하루빨리 한반도에 상호불가침의 평화조약이 체결되고, 북한이 신뢰하고 핵포기를 세계만방에 선언함으로써 반도강산에 평화의 빛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을 믿습니다.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의 정책을 친히 주장하셔서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고, 남과 북이 생명공동체로 하나가 되는 평화공동체의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