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이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나는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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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말만큼 때묻은 말이 있을까? 어떤 이는 "사랑한다"는 말을 밥먹듯이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평생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하지 못한 채 냉가슴 앓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삶의 어떤 구비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기에, 귀하면서도 물이나 공기처럼 흔하고, 흔해서 귀한 것이다. 그 사랑이 삶을 갑자기 빛나게 하고 들뜨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랑이라면 - 사랑은 곧 삶을 세우고 지탱하는 감동이고 행복일 터인데......
시인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고 노래한다. 이 사랑은 사랑을 통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실존적인 사랑이다. 이것은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이라고 노래하는 데서 인간존재의 유한함과 고독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진홍빛' 뜨거움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라는 대목에서 시인은 언제든지 죽음 혹은 사랑의 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냄새를 풍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사랑했으므로 진정 나는 행복하였네라"고 노래하고 만다.
이 처절함을 동반하는 靑馬(청마) 유치환 식의 철학적인 사랑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배창환·시인·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