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콜슨(Charles Colson, 1931-2012)은 미국 현대사를 장식했던 인물 중의 하나다.
1973년까지 그의 삶은 한마디로 `권력에 눈이 먼 음모의 달인`이었다.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갖고 있던 그는, 미국 보스턴 출신으로 브라운대학과 조지워싱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워싱턴 D.C.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닉슨 대통령의 정치참모로 발탁된다.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콜슨은 닉슨의 재선을 돕기 위해 정치적 경쟁관계인 민주당의 전국위원회 본부가 있는 워터게이트호텔 불법도청사건을 주도한 인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는 "닉슨의 재선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면 우리 할머니도 밟고 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닉슨에게 충성을 다했으며, 닉슨 역시 콜슨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전적으로 의존할 정도였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지면서 비참한 실패자로 주저앉고 만다. 리처드 닉슨 다음으로 비난을 많이 받은 인물이다. 콜슨에 쏟아진 혹평은 거침이 없었다. `사악한 천재`, `더러운 속임수의 달인.` 그가 워터게이트를 설계한 주요 용의자로 주목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콜슨은 워터게이트 의혹을 받으며 백악관을 떠난 후 변호사로서 다시 경력을 쌓으려고 방위산업체 레이시온의 최고경영자 톰 필립스를 방문한다. 당시 필립스는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에 참석해 예수님을 막 영접한 상태였다. 콜슨은 레이시온의 법률 업무를 일부 맡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필립스는 그가 새로 찾은 신앙을 이야기하는 데 열을 내며,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서 몇 구절을 뽑아 소리내어 읽어준다.
처음에는 그의 종교적 견해가 `동화 같은 소리`로 들렸다. 그러나 루이스의 책에서 교만을 다룬 `가장 큰 죄`의 내용을 읽자 그 굳은 마음에 충격을 느낀다. 헤어질 무렵에 "찰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그에게 빛과 길을 보여주소서"라고 한 필립스의 기도는 그의 마음을 울렸다. 그날 밤 늦게 콜슨은 운전대 앞에서 눈물을 쏟으며 나름 기도를 드렸다.
콜슨은 필립스의 권유를 받아들여 더그 코우 목사에게 기도를 받는다. 코우는 국가조찬기도회를 운영하며 거물급 인사들을 상대로 하는 선교단체 Fellowship을 이끌고 있었다. 거물급 인사들은 콜슨과 교제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코우는 몇 사람을 반강제로 끌어모아 이 워터게이트 죄인을 지원할 기도 모임을 결성한다. 코우의 지도를 받은 그들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의 본을 보여주었다.
콜슨이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도처에서 냉소적인 반응이 터져나왔다. 언론의 조롱은 악랄했고 그로 인해 검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일말의 가능성마저 막혀버렸다. 그는 결국 기소를 당한다. 그러나 그에게 불리한 증거는 거의 없었다. 예전의 콜슨이었다면 처벌을 면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달라진 면모가 드러났다. 기도 끝에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달은 그는 변호사의 조언을 거부하고 유죄를 인정하기로 결심한다. 워터게이트로 과열된 분위기에서 판사는 콜슨에게 1-3년 형을 선고했다.
앨라배마 연방교도소에 갇혀 있는 동안 콜슨은 참회와 겸손으로 변해갔다. 닉슨과 다른 관련자들은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콜슨은 사면에서 제외되고 변호사 자격도 취소되었다. 아버지가 죽고 아들은 마약소지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콜슨은 서서히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 시작했다. 성경 읽기에 몰두했고 동료 죄수들과 기도 모임을 시작했으며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제자훈련 과정을 마쳤다.
교만하기 그지없던 자아는 다 무너져버리고 섬기는 일을 찾았다. 남아있는 형기 동안 그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은 동료 죄수들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빨래를 자청해서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들과 기도 모임을 가지고 사랑의 교제를 나눈다.
그러던 중 1975년 7월 수감된 지 7개월 만에 뜻밖에 가석방을 받는다. 그리고 감옥에서 결심한 대로 교도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를 설립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도소 재소자, 전과자, 범죄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돕는 일에 35년간을 헌신했다. 그의 헌신적인 활동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에 종교계의 노벨상인 템플턴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시사주간지 TIME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 25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21세기 초 몇 년 간, 콜슨이 백악관으로 돌아갈 일이 생겼다. 재소자들의 재활 및 재고용과 관련하여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믿고 상의하는 친구가 된 것이다. 그는 평생 두 번 같은 자리에 섰고 전혀 다른 선택을 내렸다. 1970년대, 미국 제37대 대통령의 젊은 보좌관이었던 그는 기독교 도덕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백악관을 이끌어갔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연로한 그는 미국 제43대 대통령의 몇 가지 결정과 정책에 온전히 기독교적인 방향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오로지 성경의 진리와 성령의 능력이었다. 콜슨의 `거듭남(重生)`을 보라! 사람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