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년 어느 날, 잘 차려입은 필라델피아의 한 변호사가 일리노이주의 스프링필드에 와서 링컨의 집을 찾았다. 키가 무척 크고 호리호리한 셔츠 바람의 링컨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팔과 다리는 유난히 긴 대신 어깨는 좁고 구부정했으며 손과 발은 비정상적으로 컸다. 더욱 검은 색의 거친 머리는 생전 빗질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P. H. 왓슨입니다. 록포드의 매니 씨를 위해 법률자문을 하고 있습니다." "매코믹과 매니 사건 말인가요?" "예, 재판 날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마 재판은 스프링필드에서 열릴 것입니다. 여러 변호사, 특히 현지 변호사의 폭넓은 지원을 얻는 것이 좋을 듯하여 찾아왔습니다." 그는 링컨에게 500달러의 착수금과 거액의 수임료를 약속했다. 수임료가 몇 백 달러가 되는 사건을 맡아본 적이 없었던 링컨에게는 그 사건은 거액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왓슨이 돌아가자 빚에 허덕이며 지방에서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던 46세의 초라한 변호사 링컨은 조금 전의 일이 꿈만 같았다. 잡자기 변호사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을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변론에 필요한 것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기보다 경험도 많고 교육도 많이 받은 동부 변호사들과 겨뤄야 하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그 재판에 에드윈 스탠턴 변호사도 참가했다. 매니가 링컨을 스탠턴의 호텔 방으로 데려갔을 때. 성마르고 공격적인 스탠턴은 대뜸 "아니, 저 사람 여기서 뭐하고 있습니까? 그를 변호사단에서 빼세요. 저런 얼뜨기 인간과는 함께 일 할 수 없어요.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외모가 반듯한 인사가 아니면 난 변론을 맡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의도적으로 한 모욕이었지만 링컨은 못 들은 척했다. 법정에서도 그는 굴욕을 참아가며 또 다른 변호사 조지 허딩을 소개받았다. 이윽고 법정에 판사와 양측 변호인단 모두가 입정했다. 양측 변호사들은 이미 구면이라 서로 인사를 했지만, 링컨을 소개해주지 않아 피고인석에 혼자 어색하게 서있었다. 양측에서 각각 두 번씩 변론의 기회를 갖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런데 링컨은 자신이 스탠턴보다 며칠 빨리 고용되어 변론에서 우선권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스탠턴에게 말했다. "내가 변론 요지를 열심히 준비했습니다만, 스탠턴 씨 당신이 내 대신 변론해도 좋습니다." 스탠턴은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링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허딩은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재판이 열리는 일주일 동안 양측 변호사들은 함께 모여 자주 저녁식사를 했다. 한 번은 판사 집에 초대받기도 했으나, 단 한 사람 스프링필드 출신인 키 크고 못생긴 사람만 초대받지 못했다. 재판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매코믹의 저명한 변호사 존슨은 위대한 발명가의 권리를 설득력 있게 호소했다. 그 주장에 대해 성공적으로 반론을 제기한 사람은 역시 지명도가 높은 스탠턴이었다. 스탠턴은 링컨을 대신해 변론을 펼쳤다. 그는 매코믹의 업적을 폄하하지 않았으면서 존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링컨은 스탠턴의 뛰어난 논리에 사로잡혀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받은 것도 잊어버렸다. 그날 저녁, 링컨은 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탠턴의 변론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네. 나는 그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네. 집으로 돌아가 법률 공부를 다시 해야겠네. 동부의 친구들을 상대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겠어." 스탠턴의 뛰어난 변론 덕분에 매니는 승소했고 왓슨은 링컨에게 2000달러를 보냈다. 그에게는 적지 않는 돈이었지만, 자신이 변론에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돈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을 전하며 수표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왓슨은 수표를 다시 보냈다. 링컨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치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수치스러운 사건을 통해서 그는 자신을 변화시켰다. 품위 있는 매너와 세련된 화법을 갖추게 되었다. 1956년 5월 일리노이 블루밍턴에서 열린 공화당 창당대회에서 저 유명한 `잃어버린 연설`로 관심을 모으고 점차 전국적인 인물로 성장해서, 1960년 미합중국 대통령이 되었다. 스탠턴은 여전히 링컨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링컨은 신랄하게 비판하는 스탠턴과 명석한 머리를 가진 스탠턴을 구별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를 전쟁성 장관의 요직에 임명했다. 그는 몇 년 동안 열심히 링컨을 보필했고 링컨이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는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젖어 그의 곁을 지켰다. 링컨이 눈을 감자 후세에 영원히 기억될 찬사를 보냈다. "이제 그는 영원토록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링컨은 자존심이 추락하고 의욕을 상실할 만한 상황에서도 겸손하게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통령이 되어서 스탠턴을 요직에 앉힘으로써 겸손의 본을 보였다. 전 세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링컨을 위대한 리더로 꼽는 이유는 그가 정직할 뿐 아니라 겸손했기 때문이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8:14).
최종편집:2025-07-11 오후 01: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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