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 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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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생은 큰 시인이다. 큰 승려요 큰 독립운동가이다. 한 사람이 짧은 일생 동안 한 그루의 나무로 서기도 어려운 일인데, 그는 여러 그루의 나무로 우뚝 선 사람이다. 그러나 그 나무들은 결국 뿌리가 하나인 한 나무이다. 특히 그의 시는 사색과 실천의 결정체로 우리에게 참다운 아름다움과 지혜를 준다.
세상에 '자유'보다 '복종'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기꺼이 '자유'보다 복종을 선택한다. 이때의 '복종'은 굴종과는 다른, '선택'의 의미이며, 스스로 선택한 올바른 길 앞에 일상의 자질구레한 '작은 자유'를 복종시킨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나라를 잃은 시대는 모순(矛盾)이 분명하고 극대화된 시기이다. 일제(日帝)에 협력하면서 독립운동을 할 수 없듯이, 진리 아닌 삶을 살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시인의 단호한 구도(求道)의 자세가 내포되어 있다.
이 시가 사랑을 노래한 연시(戀詩)라고 여길 때, 의미는 크게 제한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당신'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되어, 사랑의 의미를 협소한 것으로 가두어버릴 염려가 있다. 따라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조금 무리인 듯하나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읽고 있다. 그 또한 읽는이의 자유에 속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 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 당신은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으며, 어떤 삶에 스스로를 '복종'시키고 있는가?
(배창환·시인·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