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10월 29일 우리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에서 주최하는 `2013 성주여중 통일안보현장견학`이라는 주제로 1학년과 2학년의 각 학급의 간부들 외 31명의 학생이 참가하여 현장견학을 떠났다. 자고 오는 게 아니고 먼 길을 하루만에 갔다와야 한다는 생각에 별로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기에 들뜬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통일에 대해 생각해 본적은 없어도 판문점, 비무장지대 등과 같은 장소는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평소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아서 그런지 이번은 조금 뜻깊은 여행이 될 것 같기도 했다.
견학 당일, 출발시간이 새벽이어서 무거운 잠을 안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은 신기하게도 새 둥지의 새들이 짹짹거리는 것처럼 잠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정신없이 수다를 떠는 친구새가 되어 있었다.
가는 도중 버스안에서 간식과 아침식사를 받았다. 아침식사를 하고 간식을 먹으며 가는 길에 무척 재미있었다.
견학을 가면서 자문위원님께 설명도 들으면서 견학지에 가서 쉽게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버스가 멈추고 내리라는 소리에 우리는 줄맞춰 내려섰다.
어디인지는 알아도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선 곳 바로 앞에 `평화의 종`이 마주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임진각 자유의 다리가 있었다.
자유의 다리를 보고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의 화통 모습도 관찰할 수 있었다. 총을 수십 차례 맞은 기차의 모습은 남북 분단의 아픔과 같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 기차를 보면서 총탄자국이 없어지는 치료 같은 존재는 아마 `통일`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임진각 문화해설사님의 설명도 들으며 나는 차츰차츰 우리나라의 현실과 역사에 더 귀를 기울이고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기차가 비무장지대에서부터 옮겨져 왔다고 한다. 그 옮겨올 당시엔 기차의 모습은 말도 아니었다고 한다. 기차에는 먼지와 흙이 덮여져 있었으며 그 흙먼지 사이에서 뽕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해설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나무가 우리가 통일되는 날까지 살아서 꼭 우리나라의 행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내가 만약 초등학생이었더라면 "나무가 어떻께 봐요."하고 장난스레 질문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숙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에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나와서 두 번째 견학을 했다. 제3땅굴을 견학하였다. 아파트 25층 높이를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학생의 신분으로 교복을 입고 아래로 내려갈려니까 찝찝하고 불편했지만 내려가고 내려갔다.
제3땅굴은 서울에서 44km 떨어져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이며, 규모는 폭 2m, 높이 2m였다. 하지만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해 위쪽과 아래쪽으로 부피가 커지면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했다.
땅굴 내부의 노란색 표시 부분이 북한측에서 설치한 다이너마이트 흔적이며, 방향이 남쪽방향으로 진행되어 있고, 고인물이 북쪽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러오고 공부하러 온 것에 매우 감동을 받게 되었다.
제3땅굴 견학이 끝나고 도라산 전망대 견학을 갔다. 전망대에 도착하여 헌병께서 북한의 건물과 개성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다. 그리고 전망대의 관람용 망원경으로 북한을 관측하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래 북한에 전시용 아파트가 있는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신기하였다. 하지만 웃긴 점은 그 아파트는 아침에 동시에 불이 켜지고 동시에 불이 다 꺼진다고 한다.
열심히 북한에 대해 배운 뒤 드디어 우리는 `판문점`으로 갈 마지막 준비를 하러 갔다. 판문점에 가기 전 JSA교육장에 가는 길은 매우 이상했다. 처음 그냥 도로를 가는데도 헌병들이 관리를 다 했었다. 그리고 자문위원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길은 판문점으로 향하는 길이며, 옛날에 대통령님께서도 이 길을 지나가셨다고 하셨다. 교육장에 도착해 판문점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들었다. 북한의 공격은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치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 도끼만행사건은 매우 참혹하였다. 그리고 판문점으로 갔다. 판문점에 갈려고 하는데 마침 북한의 도발행동 위험으로 인해 우리는 회담장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유의 집 안에서만 볼 수 밖에 없었다. 38선 경계너머 북한의 판문각에 많은 북한 군이 보였다. 정말 엄청난 긴장감이 느껴졌다.
견학을 갔다 와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통일에 대해선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인 적은 없다. 별로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었고, 지금 살아가는 데도 나만 좋으면 되니까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견학을 계기로 통일이 왜 되어야 하는지 되면 무엇이 좋고 나쁜지 지금 나쁜 것이 나아가 후손들에게는 좋은 시대를 열어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해준 견학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견학으로 나의 바뀐 생각은 우리나라는 북한과 경제차이가 40배이고, 독일의 동독과 서독은 4배였다. 하지만 독일은 지금 세계 경제 순위 5위권 안에 든다.
국민소득 비율에 맞추자면 우리나라는 인구가 많아져야 할 것이다. 통일이 되어 그 인구가 모여 생산활동, 제조활동을 거쳐 나아가 우리나라는 독일 못지 않은 경제력을 뽐낼 것이며, 북한의 군사력과 우리나라의 기술이 합쳐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거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