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4호선 전철 숙대입구역에서 내려 굴다리를 지나 청파동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무심히 길 건너편을 바라보다가 나는 눈에 들어오는 간판 하나가 있어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그네 교회` 그 교회는 삼일교회라는 대형 교회와 거의 맞붙어 있었는데 처음엔 삼일교회의 부속건물이려니 생각했다가 자세히 보니 십자가도 따로 세워져있는 독립된 교회가 확실했다. 그런데 교회이름이 나그네라니? 나는 평생 이런 교회간판은 처음 본 것 같다.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신(神)을 찬미하는 교회이름이 아닌 너무나 낭만적이고 어쩌면 참으로 인간적이며 문학적인 표현이 아닌가? 저 교회의 목사님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혹시 여행을 좋아하는 분일까?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닐까? 아니면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인생은 나그네길이라서 그냥 부친 이름일까? 이름그대로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이 아무 때나 와서 쉬어가는 교회인지? 벼라 별 상상을 다 하면서 그 교회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비교적 그 길을 자주 다니는 편인데도 교회 간판을 그날에야 처음 보게 되다니, 언제 시간을 내어서 한번 방문해 봐야겠다. 올 초, 나는 한뫼 선생의 추천으로 경의선문학을 통해서 여행 작가로 등단을 하였다. 여행 작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어도 문예지에 정식으로 등단을 한 것은 국내에서는 최초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지난달 격월간지 여행 작가라는 잡지를 창간해서 12명의 화가 작품을 특집으로 실고 창간기념전시회까지 열었는데 지금은 새해 창간특집호 준비에 바쁜 시기여서 여행이나 나그네라는 단어에 관심이 더 많이 가는 것 같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고 나그네 길이라고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인생을 한낱 뜬구름같이 한번 나타났다가 바람 한 번 불면 휙 지나가 버리는 부질없는 것이며 어디서 왔다가 어느 곳으로 가는지도 모른 체 그저 왔다 그냥 가는 게 인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세월 따라 한두 살 나이가 보태지다 보니 산다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나그네같이 떠도는 여행길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고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가수 서유석이 신곡을 발표했는데 제목이 `너 늙어봤냐? 나 젊어 봤다이다 그 노래 가사처럼 나이가 들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솔로몬 왕도 마지막에는 헛되고 헛되도다 한 것처럼 권력과 부와 명예도 다 헛되고 물거품 같은 허무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나 자신도 그런 아무것도 아닌 헛된 것에 연연하며 살아온 것 같아 부끄럽고 또 수치스런 마음이 든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어떤 인연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해석이 아니더라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 세상 이치려니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십여 년 전 뉴욕에 갔을 때 일행 중 누군가가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한국도 아닌 미국 땅에서 그것도 뉴욕 한복판에서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나그네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혼자 떠나는 여행을 잘 하는 편이다. 가끔 스케치여행을 갈 때도 굳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간다. 그저 내키는 대로 가다가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편하게 그리다가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식이다. 길 나서면 그냥 나그네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좋은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원로작가이신 옥농 선생은 화단에 멋쟁이로 소문나 있는데 해외여행도 자주 하는 편이고 미국에는 아들이 있어서 한 번 가면 몇 달을 지내다가 오기도 한다. 이분이 칠십이 넘은 나이에 옛 직장 동료들과 서울에서 강릉까지 도보여행을 하면서 화첩에 스케치와 기행문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분의 노익장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해서 나도 언젠가는 그런 여행을 꼭 해보려고 한다. `그는 부유(富裕)해서 죽었고 나는 부유(浮游)해서 살아있다` 이 말은 한뫼 선생이 한 말이다. 다 같은 췌장암을 앓았는데도 스티브 잡스는 부유(富裕) 해서 그 부와 명예를 버리지 못했고 한뫼는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국땅의 나그네가 되어 부유(浮遊)하면서 여행을 통해서 기적적으로 암을 극복하였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부유라는 말은 같지만 뜻은 천양지차가 나는 것이다. 나는 Y대학교 여행 작가 강의시간에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스티브잡스와 같이 부를 이루지도 못했지만 한뫼같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지도 못한 삶이었기에 되돌아보면 참 한심한 인생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하나를 선택한다면 후자를 택하고 싶다. 또 한해가 저물어 가는 때에 올 한해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금년은 유난히도 힘든 고개를 넘어 온 것 같다. 살다보면 어려울 때도 있고 쉽게 가는 때도 있게 마련이다. 그때그때마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삶의 고개를 잘 넘어 가야하리라. 이제 숨고르기를 하고 다시 나그네 길을 걸어야겠다. 정처 없이 가다보면 어디쯤에서는 쉬어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바쁘게 걸음을 재촉해야 할 순간도 있으리라. 가다가 또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면 그 인연 따라 제미 있는 일도 만들면서 나는 그렇게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부유(浮游)하면서 걸어가고 싶다. 그리고 조만간 나그네교회를 꼭 한 번 찾아가 보려 한다.
최종편집:2025-07-11 오후 04: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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