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도(시인) 그분은 죽으면 생전 지게질에 어깨부터 썩는다는 농부였다 나도 그 어르신을 잘 안다, 그분은 내 친한 친구의 아버지였다 아랫목 방구들 싸아하니 식어지면 마른 장작 가져다 군불을 때고 고욤나무에 접붙여 가을을 열게 하던 그의 사투리 같은 삶이 마침표를 찍었다 집도 아닌 아들네도 아닌 낯선 도시 희디흰 중환자실 침대 위에서 최후의 눈꺼풀이 고단한 생을 덮었다 호박색 조등(弔燈)이 걸리고 나무즙을 빨아대던 매미 같은 자손들의 울음도 이만저만 수그러들고 치러야 할 일로 분주하기만 한 시간 나는 문득 처연해진다, 영안실 앞 문상객을 위한 천막 안에서 지게 작대기로 살아온 그분들의 삶 누천 년 이어온 흙빛 원시의 삶도 이제 그분이 마지막이고 사라져가는 그들 뒷모습을 그나마 추억하는 것도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거란 생각에 ----------------------------------- 사람은 하나의 독자적인 생명체이면서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한 사람의 슬픔이 다른 사람의 슬픔이 되고, 한 사람의 기쁨이 다른 이의 기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한 세대를 이루며 운명의 공동체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 세대가 간다"는 것은 고락을 함께 해 왔던 '벗'들이 이 땅에서 함께 사라져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세대도 사라져야 될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詩의 '세대'는 농경 시대의 마지막 세대이면서, 이민족의 강탈과 동족끼리 상잔의 비극을 겪은 세대이고, 그런 가운데 자신의 뼈와 살을 깎아서 자식들을 길러온, 이 땅의 진정한 주인들이었으며, 성실하고 헌신적인 '흙의 자손'들이었다. 이제 그 세대가 사라지려 하고 있다. 그 세대의 사라짐은 거기에 젖줄을 대고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 온 지금 세대들의 삶의 한 축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누천 년 이어 온 흙빛 원시의 삶'이 사실상 끝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친구의 아버지였던 사람 역시 이 땅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그것도 차가운 중환자실 침대에서. '흙의 아들'들이 '흙'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풍경이 적막하다 못해 슬프다. (배창환·시인·성주문학회)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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