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글자로는 모든 사람이 빨리 알 수 없고 널리 볼 수도 없는데, 조선 언문은 본국의 글일 뿐더러 선비와 백성과 남녀가 널리 보고 알기 쉽다. 슬프다.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해 크게 요긴하건만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못하고 업신여기니 어찌 안타깝지 아니하리요." 조선의 선각자가 쓴 글이 아니라,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참가한 호머 헐버트 박사가 1890년 `사민필지(士民必知)`에 쓴 글이다. "200개가 넘는 세계 문자를 검토해본 결과 한글은 현존하는 문자 중 가장 훌륭한 문자임이 분명하다. 누구라도 한글을 대하면 배운지 나흘 만에 책을 읽을 수 있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 보급이 조선 근대화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했다. 한글 때문에 조선이 발전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헐버트 박사의 그런 판단은 옳았다. 일제에서 해방되었을 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한 세대 만에 15대 경제 대국이 되었다. 무역 1조 시대를 열어 10대 무역 대국이 됐고, 전자·철강·조선·자동차 산업은 세계 5위에 들며, 5000만 인구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이룬 일곱 번째 나라가 됐다. 대다수 선진국은 다 인구가 적어도 풍부한 자원 덕분에 선진국이 됐지만 우리는 자원이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오직 한글 덕분에 낮은 문맹률과 높은 교육렬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60년대 수출 입국을 시작할 때도 우리 근로자들은 작업지침을 읽을 수 있어 좋은 제품을 빨리 생산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한글 발명은 한자 문명 시대로부터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은 한글 문명 시대로 전환시킨 혁명적인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문자"(미국 언어학자 레드야드 교수)로 평가받는 한글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로 꼽힌다. 2007년도 UNDP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의 문자 해독률은 99.8%로 세계 1위였다. 한글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외국인을 상대로 가르쳐 보면 불과 40분 만에 한글을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이 배우기 쉽다는 것은 한글의 과학성을 말해준다. 이와 같은 한글의 과학성, 편리성, 그리고 위민정신에도 불구하고 이 고마운 한글을 고맙게 여기고 가꾸기는커녕 쓰기를 꺼려하고 경시하는 풍조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세종대왕은 고심 참담하신 끝에 최고의 문자 한글을 창제했지만, 사대부와 학자들은 한자로만 학문을 했고 시를 남겼다. 지금도 가진 자 배운 자들은 한자를 숭상했듯 영어를 숭상하고, 학문도 대학 강의도 영어로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다 보니 한글로 된 세계적 저작은 드물 수밖에 없고, 굳이 한글을 애써 가꿀 이유가 없게 됐다. 김정희 한석봉 같은 중국을 능가하는 서예가가 많았지만 모두 한자만 쓴 까닭에 한자 서체만 풍부하게 했던 것이다. 국내 신문·방송들은 언제부턴가 외래어를 거리낌없이 마구 사용하고 있다. 그야말로 범람 수준이다. 보이스피싱, 스미싱 등 범죄용어에서부터 실루엣, 빈티지, 소셜 커머스, 보톡스, 뉴라이트, 글로벌, 드림팀, 스펙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챌 수 없는 말 투성이다. 왜 `치유`라는 우리말은 제쳐놓고 `힐링`이라고 해야 하는지,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다. …팩트에 근거하지 않는 `아버님전 상서`는 저널리즘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모 신문의 사설에서 말했는데, 여기서 앞에 말한 `사실`과 뒤에서 언급한 `팩트`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묻고 싶다. 그러면서도 한글날 사설에서는 `국어를 사랑하자`느니 `국어는 국가의 경쟁력`이라느니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한다. 국민의 언어생활을 선도해야 할 매체들이 이렇고 보니, 일상의 대화, 아파트 이름, 상풍명, 상호명, 기업과 기관명에도 외래어나 로마자로 뒤덮이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특히 외래어 사용이 남발되는 분야로 화장품 업계와 의류 관련 업계라고 생각되는데, 상표에 사용되는 외래어의 80~90%는 보통 알 수 없는 말로 도배해 놓았다. 이들 얄팍한 상술로 이용하던 것이 이제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일상화 보편화되고 있다. 외래어의 남용은 문화적 사대주의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문화융성의 선진국을 이루는 손쉬운 길은 국민의 언어생활부터 선진화하는 것이다. 온 국민의 국어교양 확립과 바르고 고운 언어, 논리적인 언어훈련이 필요하다. 먼저 외래어 남용을 삼가자. 물과 커피는 셀프입니다"를 "물과 커피는 직접 드세요"로, `나의 와이프`는 `나의 아내`로 바로 사용하자. "5천원이세요"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사물에 존대사를 붙이는 언어 습관도 고쳐야 한다. 피동태의 말글을 즐겨 쓰는 것도 하루 빨리 고쳐야 할 고질병이다. "~라고 생각한다"가 아니라 "~라고 생각된다"고 말한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면 잡아가기라도 할까봐 겁을 내는 것처럼. "00장 00절을 보면" 이라고 하면 될 것을 "~을 보게되면", 심지어 "~을 보게되어지면"이라고 설교 중에 말하는 목사도 있다.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같다`라는 말을 꼽을 수 있다. 사람들은 명확한 것이나 일에도 `~같다`는 말을 곧잘 갖다 붙인다. 영하 20도 가까운 추위에도, "매우 추워요"라 하지 않고 "매우 추운 것 같아요"라고 한다. 좋으면 "좋다"고 해야지 "좋은 것 같아요"라는 기형어가 유행이다. 정치인들의 막말, 아무런 여과 없이 쏟아내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비속어·축약어 공해는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다. 중고교생의 80.3%가 대화 시 욕설·협박·조롱이 담긴 공격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도자기에 비하면 한글은 고려청자와 같고 일본의 가나(假名)와 중국의 한자는 종이접시에 불과한데, 청자엔 줘도 안 먹을 음식이나 담겨 있고 종이접시엔 산해진미가 담겨 있으면, 손님이 어떤 접시를 집어들까?" 언어학자 유재원 교수(외국어대)의 말이다. 고려청자에 산해진미를 담자. 광화문에 앉아 계신 세종대왕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지 말자.(2014.1.6)
최종편집:2025-07-11 오후 04: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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